24일(이하 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장기교착된 북핵 대화흐름에 숨통이 트일지 주목된다.
한국과 한반도 주변 역학질서를 이끄는 미국·중국이 정상간 접촉을 통해 '접점찾기'를 모색한데 따른 것이다.
특히 세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지는 않았지만 한·중, 미·중 정상간 연쇄접촉을 통해 일정한 공통분모를 확인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선언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의 의견교환이라도 한·미·중 3국 정상이 북핵 문제에 대한 공통인식을 확인하고 공동 노력을 꾀한다는 '컨센서스'를 형성한 것은 새로운 정세변화의 계기점을 마련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큰 틀에서 볼 때 한·미·중 3국 정상은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론을 확인하면서도 북핵 대화의 기본 틀인 6자회담 재개의 방법론을 도출하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총론 동의'와 '각론 이견'은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양측은 이미 지난달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북핵 해법에 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등 정상간 접촉에 앞선 '사전정지' 작업을 벌인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양국이 전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북핵 불용'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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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6자회담 재개를 바라보는 양국 정상의 시각차는 여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사전조치 이행'에, 시 주석은 '6자회담 재개'에 방점을 찍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북한이 취하는 행동에 근거해야 하며 북한이 아직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는 의도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등 미국이 요구하는 사전조치를 북한이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면서 중국이 '대북 지렛대'를 보다 강하게 활용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은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데 잘 협조하고 있으며 양국이 국제 공동체로서 북한에 국제 의무를 지키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6자회담을 가능한 한 빨리 재개해야 한다"는 답을 내놨다. 북한의 사전조치 이행이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북한을 압박하는 방식 보다는 일단 대화테이블로 끌어들이는게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특히 시 주석이 앞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측 방식으로 북한을 설득 노력 중"이라고 언급한 것도 미국과 미묘한 입장차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다시말해 제재와 압박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싣고 있는 한·미와는 달리 경제 지원 등을 통한 '달래기' 방식으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대목은 시 주석의 이번 발언이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21일 평양방문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온 이후 나왔다는 점이다. 대화 재개의 조건과 형식 등에 관해 북·중간에 일정한 교감이 형성됐고 이를 바탕으로 시 주석이 '중국측 방식'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원칙론을 견지하면서도 일정한 유연성을 발휘하려는 기색이 읽힌다. 북핵 대화재개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앞으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이 있고 북한 핵능력 고도화 차단의 보장이 있다면 대화 재개 관련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조치 이행을 압박하는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전제로 6자회담 재개에 전향적으로 응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한·미 양국의 입장은 25일로 예정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거쳐 보다 분명한 형태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북핵 해법을 둘러싼 세 정상의 공통분모는 앞으로 실무적 후속접촉을 거치며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중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교차방문을 통해 대화의 조건과 수순을 협의하며 6자회담 재개의 밑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우다웨이 수석이 조만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글린 데이비스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와 회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리 장관은 지난달 방중 때 기자회견에서 "미·중 양국이 서로의 안(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다웨이 수석이 방미할 경우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놓고 미·중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대화재개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여전히 적지 않다.
6자회담 재개 조건과 수순을 놓고 한·미와 북한간 입장차가 워낙 커 중국의 '중재역'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대화재개 흐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다. 자발적 핵포기의 대표적 사례인 우크라이나가 국가적 분열의 위기상황에 직면한 상황을 보면서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형성된 신(新)냉전 구도도 6자회담 재개에 불리한 환경을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다자외교 무대에서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6자회담 재개과정이 순조롭지 못할 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