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4개월간의 대정부 투쟁 종료, 득실(得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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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협회장 송은석기자

 

대한의사협회가 오는 24일로 예고한 집단휴진을 거두기로 하면서 진통을 겪었던 대정부 투쟁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총 4개월에 걸쳐 이슈의 중심에 섰던 의사협회의 투쟁 일정과 성과 및 한계점 등을 되짚어 본다.

◈ 원격의료에서 촉발, 병원 자회사 허용으로 불붙어

시작은 원격의료였다. 지난해 10월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갑작스레 입법예고되면서 의료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원격의료는 1차 의료기관에 타격을 줄 수 있고, 대면진료의 원칙을 흔들 수 있는 것이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반대 여론이 컸던 상황.

정부에서는 1차 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하겠다며 의료계를 구슬렸지만 반발은 갈수록 거세졌다. 특히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불과 4개월 전만해도 원격의료 입법을 반대했다는 사실이 국회 문건을 통해 드러나면서 입장을 급선회한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진영 전 장관이 물러나 주무부처 장관도 없는 상황에서 원격의료 입법이 왜 공청회 한번 열리지 않고 추진됐을까. 의료기기를 차세대 사업으로 삼은 삼성을 위한 것이라는 근거 불확실한 소문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워낙 관심이 많다는 설까지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도화선이 원격의료였다면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대책이었다. 병원에 금지돼 있는 영리사업을 자회사를 통해 풀어주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병원은 장례식, 매점 등 몇몇 부대사업을 제외하고는 다른 영리 사업을 하지 못한다. 의료 본연에 충실하라는 목적이다. 그런데 병원이 자회사를 만들어서 숙박 관광 레져 화장품 의료기기 등 거의 모든 사업을 할 수 있게 풀어주겠다는 안이 발표됐다. 이는 심지어 법 개정 사안도 아니고 정부 령만 바꾸면 돼 국회 논의 절차도 건너 뛰는 상황이었다.

즉각, 영리자회사 설립이 영리병원과 사실상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나왔다. 모회사, 즉 병원의 수익이 자회사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며, 의사들이 각종 자회사 관련 영업을 하느라 의료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져갔다.

의료계를 더 자극한 것은 이 두 가지 중요한 보건의료정책을 이행하는데 있어 의사협회 등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즉각 투쟁 모드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월 15일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의협 간부들이 삭발을 하고 노환규 회장이 자해를 시도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 의약분업 이후 14년만에 집단휴진 현실화되기까지

1월 11일에는 파업출정식이 열려 비대위가 '조건부 파업'을 결의했다.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을 때에는 3월 3일부터 집단휴진, 즉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의협은 2월부터 파업을 볼모로 본격적인 협상 모드에 들어갔다. 진통 끝에 2월 18일 발표된 1차 의정 협의문이 나왔지만 노환규 회장 본인도 만족하지 못하는 협상 결과였다. 원격의료 선(先)시범사업 등에 대해서는 의견 차만 확인했다. 노 회장이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정부와의 협의문을 부정하면서 내홍이 심해지는 듯 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의사협회 전체 회원들이 참여한 총투표였다. 1차 의정협의 결과를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 즉 3월 10일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냐를 묻는 투표가 진행됐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약 4만8천여명의 의사들이 파업을 찬성했다. 무려 76%의 찬성률이었다. 그간 고질적인 저수가 구조와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만도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드디어 의약분업 이후 14년만에 의료 파업이 현실화됐다. 의협 집행부는 총파업 투표 결과를 가지고 3월 10일 월요일 하루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 하지만 개원의 중심이어서 혼란은 크지 않았다. 응급인력과 필수인력도 그대로 있었고, 병원급에서는 진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정부는 높은 파업 찬성률에 뜨끔했고 응급, 필수 인력까지 포함한 2차 파업을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

막판에는 전공의들이 파업의 핵으로 떠올랐다. 막내 의사들인 인턴, 레지던트들은 불균형한 수가 구조와 의료영리화 정책으로 왜곡되는 의료 시장의 잠재적 피해 당사자들이었다. 게다가 주 100시간 이상 근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들이 하나둘 파업 동참 의사를 밝혔다. 파업 참여 시 의사면허 취소까지 운운한 대검 공안부와 정부의 과잉 대응도 화근이 됐다. 결국 서울 빅5 병원 전공의를 비롯해 대부분 전공의들이 24일 파업 동참을 결의했다. 막내들의 참여로 의협은 파업 동력을 얻게 됐다. 정부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반쪽짜리 의정 협의, 실무 투쟁은 이제부터

시간끌기와 단계적 전술로 투쟁 수위를 높여간 의협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정부였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원격의료의 시범사업 등을 받아들이겠다며 대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후 의협과 정부는 총 네차례 만나 합의점을 찾았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3월 17일 의정 합의문이다.

우선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시범사업 기간을 6개월 두기로 했다. 의료영리화로 비판받던 투자활성화대책은 부작용을 막는 논의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논의기구에는 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각종 의료단체들이 들어가기로 했다.

원격의료의 시범사업을 명시하기는 했지만 정책들을 완전히 철회 또는 재검토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단체는 의정 협상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여론을 등에 엎고 시작한 투쟁이었지만 끝내 명분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대신 의협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를 보다 유리하게 개편하고, 건보공단과의 수가 협상 결렬시에 한 번 더 조정을 거칠 수 있는 조정위원회를 설치한다는 실리를 챙겼다. 보험료부터 수가까지 주요 정책을 주무르는 막강 심의 의결기구인 건정심에서 의사들 몫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결국은 수가 싸움이었다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결국 말 많던 의정 합의문 수용 여부를 묻는 회원 투표에서 다수(62%)가 받아들이자고 결정하면서 24일 파업은 철회됐다. 길었던 대정부 투쟁은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의사협회가 수가 등 집단 이해관계가 아니라 원격의료, 의료영리화 등 정책에 반대해 싸움을 시작했고 어느정도 끌고갔다는 측면에서 나름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때보다는 여론이 좋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뒷심 부족과 파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명분을 끝까지 살리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로 남는다. 협상 성과가 미비하자 정책적으로 공조했던 시민사회단체와 보건의료노조와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제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어떻게 시행할지, 투자활성화대책의 부작용을 어떻게 막아낼지가 추후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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