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남 김해의 A 주유소. 가짜석유 단속을 위해 투입된 한국석유관리원 단속 차량이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
연료통에 주입된 경유 온도가 바깥 기온(11도)보다 훨씬 높은 20도에 달했던 것. 이는 경유를 인위적으로 가열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석유관리원은 곧바로 해당 주유소에 대해 정량·품질검사를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주유소 건물 뒷공간에 설치된 가정용 보일러와 지하 기름저장탱크로 연결되는 고무호스를 발견했다.
조사결과 이 주유소는 보일러 시설을 통해 저장탱크의 기름을 50도 이상으로 가열한 뒤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름을 가열하면 한시적으로 부피가 늘어난다는 점을 이용한 지능적인 정량미달 판매 수법이다.
하루 정도 지나면 부피가 원상태로 돌아가지만 운전자는 이를 알 수도, 확인할 방법도 없다.
19일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경유를 1도 가열하면 부피가 0.09% 증가한다. 통상 가열 후 20∼30도로 식혀 판매하는 점을 고려하면 판매액 대비 1.8∼2.7%의 부당이득이 발생하는 셈이다.
A 주유소는 이런 수법으로 2012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3억원의 추가 수익을 챙긴 것으로 석유관리원은 추정했다.
앞서 지난달 27일에도 대구와 경북 경산에 있는 주유소에서 각각 같은 수법으로 주유량을 속여 판매하다 석유관리원에 덜미를 잡혔다.
이번에 적발된 주유소 세 곳의 업주는 모두 사기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석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수법"이라며 "폭발·화재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정도까지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당국의 강력한 단속으로 가짜석유가 설 땅을 잃자 최근 들어 이처럼 기상천외한 방식의 정량미달 판매가 활개하고 있다. 한쪽을 누르면 한쪽이 튀어나오는 일종의 '풍선효과'다.
정량미달 판매 적발건수는 2009년 3건(적발률 0.5%)에 불과했지만 2010년 13건(1.1%), 2011년 22건(0.9%), 2012년 74건(2.6%), 2013년 81건(2.4%) 등으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서는 1∼2월에만 34건이 적발돼 작년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적발률도 3.8%로 역대 최고다.
석유관리원 측은 "가짜석유 유통·판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업자들이 손쉽게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정량미달 판매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정량보다 3∼5% 적게 주유 되는 신종 주유기 조작 프로그램을 판매한 업자와 이를 구입해 사용한 주유소 업주들이 대거 적발된 일도 있었다.
문제는 정량미달 판매의 경우 가짜석유와 달리 단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용제형 가짜석유는 원료인 산업용 도료나 시너 등의 용제 유통을 단속하는 방식으로 근절 단계까지 왔고 등유혼합형 가짜석유도 등유 유통을 모니터링해 어느 정도 세를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정량미달 판매는 일일이 주유소를 돌며 확인하거나 관련 업자의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적발이 한층 까다롭다.
석유품질 관리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석유 가열 행위의 폐해와 소비자 피해 등을 고려해 석대법에 명확한 근거 규정을 두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산업부는 최근 주유기를 조작해 정량미달 판매를 한 사업자에 대해 한 번 적발되면 바로 사업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석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