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정부가 '국민 대통합'을 기조로 하는 다문화정책을 내놨지만, 정작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관련 종사자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최근 나온 지침이 다문화가족을 직접 방문해 한국어나 부모 생활 등을 가르쳐주는 교육을 올 하반기부터 일부 유료화 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이에 전국 각지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종사자들 200여 명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성공회성당에서 토론회를 열고, 정부에 해명과 대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 말할 상대도 없고 TV도 못 보다가…"방문교육 없었다면 아예 공부 못했을 것"
2년 반 전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한 네팔인 타망(29.여) 씨. 타망 씨도 처음에는 지역의 센터로 직접 나가 한국어 수업을 들었다. 남편 김모(47) 씨가 매일 센터까지 왕복 8km에 달하는 거리를 타망 씨와 함께 걸어서 다녔다. 타망 씨가 교통 체계 등 길부터 익히게끔 도와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타망 씨는 임신을 했고, 꼬박꼬박 센터를 다니기 어려워졌다. 타망 씨 부부는 그 때 '방문교육'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매주 2번씩 집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타망 씨는 "방문교육을 통해 말만 배운 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생각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선생님과 화장품이나 책을 함께 사러 다니기도 하면서 점점 한국 사회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는 것.
타망 씨는 2년여 만에 상당히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게 됐다. 아이만 조금 더 자라면 직장에 다니면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완벽히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다.
베트남 이주여성 A 씨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시어머니와 문화 차이로 갈등을 겪었지만, 한국어를 몰라 대화조차 나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방문교사의 도움으로 초기에 고부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들은 개중에 양호한 케이스다. 남편이 아내를 돌볼 수 있었거나 교육에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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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아니라지만…"'지원 축소' 염두에 두는 것으로 밖에 안 보여"여성가족부는 지난 2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2014년 사업 지침을 내려 보냈다. 이 중에는 올 하반기부터 일부 방문교육을 소득수준에 따라 유료화하고 한국어 집합교육은 지자체로 이관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방문교육과 관련한 국내 일반 가정과의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고, 한국어 교육은 지자체 단위로 제공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무상 방문교육 대상자를 제한하는 방침 등이 다문화가족에게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지원을 사실상 축소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이주민의 경우 초기에 언어 및 문화 교육을 받지 못하면 계속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경제·사회적 취약계층. 서울 지역 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관계자는 "돈을 내고 방문교육을 받거나, 센터에 찾아와 집합 교육을 받으라고 한다면 누가 선뜻 할 수 있겠냐"며 "결국 대상자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한 이주여성 B 씨는 시어머니가 센터에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내내 집에만 있는다. 베트남에서 온 C 씨는 고향에서 차를 타고 다닌 경험이 없어 멀미가 심하지만, 인근 센터까지는 버스로 1시간이 걸려 결국 집합교육 받기를 포기했다.
이 밖에도 일각에서는 한국어 교육을 지자체로 이관하면 관리가 더 어려워지는 문제 등,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정부는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과정에 소홀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회의 한 관계자는 "사업 내용이 바뀐다고 하자 당장 교사 등 종사자들의 업무가 딴판으로 전환되거나 재계약을 못하는 형편인데도, 정부는 설명회 한 번 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인천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정부 입장을 들여다보면, 결국 사업을 합치고 줄이겠다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현장에서 빚어진 오해'라고 일축했다.
여가부의 한 관계자는 방문교육 유료화에 대해 "비슷한 서비스를 받는 국내 일반 가정과의 형평성 문제로 꾸준히 논의됐던 문제"라며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님을 밝혔다.
또 "다문화가족이라고 해서 다 경제 사정이 나쁘지는 않고 방문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도 있다"면서 "시군구 단위로 여러 군데에 교육 시설을 마련해 접근성을 높이면 모여서 교육을 받기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타망 씨의 남편 김 씨는 "언어도 모르는 상태로 낯선 나라에 온 이주민들과 일반인은 시작부터 다를 것"이라면서 형평성 논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 "한국 사회 일원으로 평생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인데, 다문화를 장려하려면 여력이 되는 한 초기 정착만큼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