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열차 조감도. (사진=현대로템 제공)
코레일이 지난 5일 현대로템 측과 KTX 산천 구매 계약을 맺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오는 2017년 말 개통 예정인 원주~강릉 간 고속철도에 KTX 산천 150량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금액만 무려 4천94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거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코레일과 현대로템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 의혹을 낳고 있다.
◈ 250km 철로에 시속 300km 고속열차 운행
원주~강릉 간 고속철도(연장길이 113.7km)는 경부선, 호남선과 달리 시속 250km에 맞게 설계된 고속화 철도이다.
그런데 이곳에 투입되는 고속열차는 시속 300km를 달리는 KTX 산천이다.
국내 유일의 고속열차 생산 업체인 현대로템이 오는 2019년 초까지 시속 250km대 열차를 양산할 수 없는 상황에서 2018년 초에 치러지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승객 수송을 위해 결정된 궁여지책이다.
코레일과 현대로템은 KTX 산천의 속도를 줄여 250km로 달려도 안전과 에너지 효율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계약을 밀어붙였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외국에서 온 선수와 관광객들이 당연히 국내산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게 맞다”며 이번 계약을 서둘러 끝낸 배경을 전했다.
◈ 시속 300km vs 250km 고속열차…가격 차이는?코레일이 현대로템에서 구입하는 시속 300km KTX 산천 150량 가격은 4천940억원이다. 열차 1량 당 무려 32억9천만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250km대 준고속 열차 가격은 얼마일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한다면 당연히 300km 열차 보다 저렴해야 한다. 실제 엔진성능과 추진제어장치 등 주요 부품의 기술력 차이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현대로템은 비슷한 가격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오는 2021년부터 시작되는 제3차 철도망구축계획은 주로 250km대 열차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데, 로템이 기존의 300km 열차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국내 고속철도 공급시장은 로템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을 통한 단가 인하가 불가능하다”며 “이는 고스란히 열차 이용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국토부도 코레일이 원주~강릉 구간의 고속열차를 시속 300km KTX로 결정한 것에 대해 묵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 코레일, ‘경영 효율화’…열차 구입은 맹탕코레일은 이번 원주~강릉 구간의 고속열차를 구매하면서, 사후 유지관리비가 250km 준고속 열차 보다 300km 열차가 오히려 저렴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현대로템에 힘을 실어 준 것으로 드러났다.
물건 구입자가 판매자 입장을 오히려 두둔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코레일은 현재 모든 차량 정비와 신호체계 등 유지관리 시스템이 시속 300km KTX에 맞춰져 있어 250km 열차를 구입하면 시스템 전환에 따른 관리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코레일이 처음부터 관리비용을 염두에 두고 고속열차를 선정했는데, 열차 구입 단가를 낮추기 위한 협상은 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코레일 또한 독과점 공기업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냐”고 비판했다.
◈ 코레일, 현대로템…정부 ‘3차 철도망구축계획’에 콧방귀정부는 10년 단위의 ‘철도망 구축계획’을 수립해오고 있다.
국토부는 이미 지난 2011년 시작된 제2차 철도망구축계획에 200km 초중반의 준고속 열차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고시했다.
하지만 현대로템은 뒤늦게 기술개발에 들어가 빨라야 오는 2019년 초에야 200km대 열차를 양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300km대 고속열차에 대한 기술투자에 집중하다 보니, 200km대 열차 생산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또, 코레일의 경우도 정부의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직까지 200km대 열차에 대한 운영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대 로템이 오는 2019년부터 시속 200km 중반의 준고속 열차를 양산한다 해도, 결코 납품 단가는 낮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코레일은 로템이 제시하는 비싼 가격에 열차를 구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