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강원도에서 매년 수백만 t씩 하천에 버려지는 눈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강원 동해안 지역에 최근 1m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가운데 눈을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19일 강원발전연구원 이원학 부연구위원은 "매년 겨울마다 바다 등에 버려지는 '설빙(雪氷)에너지'를 신 재생 에너지원으로 연구해볼 만하다"며 "특히 3∼4월까지 눈이 내리는 강릉·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이기도 해 활용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지난 2012년 11월 공동 발간한 정책메모 '신재생에너지 설빙과 강원도'를 통해 설빙에너지 관련 연구센터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설빙에너지란 겨울철 자연의 냉기로 인해 잠열(潛熱)이 축적된 설빙의 냉열을 말한다.
눈 1t이 약 10ℓ의 석유와 동등한 에너지 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CO₂30㎏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설빙에너지는 겨울철의 눈과 얼음을 보존했다가 여름철에 그 냉기와 냉수를 냉방과 농작물 저온저장 등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한겨울에 얼려둔 얼음을 추석까지 사용했다는 우리 조상들의 '석빙고'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실제로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설빙에너지를 공공시설, 산업시설, 농업시설, 개인냉방에 활용해 신재생에너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2012년 기준 144개의 설빙에너지 이용시설이 북해도를 중심으로 가동되고 있고, 정부가 관련법규를 마련해 제도적으로 지원하면서 활용사례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눈은 낮은 온도뿐만 아니라 적절한 습도까지 함유하고 있어 감자 등 농산물의 당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해 다양한 식품의 저온저장고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강원발전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설빙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미미한 실정이다.
현재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지정된 에너지원은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 풍력, (소)수력, 해양(조력 등), 폐기물, 지열, 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화 및 중질잔사유가스화, 수소에너지 등 11가지로 설빙에너지는 이에 포함돼 있지 않다.
폭설 단골 지역인 강원 동해안에서는 지난 2011년까지 최근 3년간 연평균 123.9㎜의 적설을 보였다.
제설비용으로만 2009∼2010년 63억3천만원, 2010∼2011년 10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도심에서 모인 눈들은 공터나 하천 둔치, 바다에 더미째 버려져 자연적으로 녹을 때까지 방치되는 형편이다.
스키장이나 겨울 축제장의 눈들도 시즌이 끝나고 나서는 '눈 쓰레기'로 폐기되기는 마찬가지다.
강원발전연구원은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환경올림픽 실현을 위해서도 설빙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해 경기장, 선수촌, 미디어촌 등 건축물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단일 건물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도내 스키장 리조트나 워터파크, 대학교, 인터넷 데이터센터 등과 연계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이원학 위원은 "최근 신재생 에너지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대규모 장비나 설비를 설치하는 것보다는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신재생 에너지의 목적에도 맞다"면서 "하지만 설빙에너지에 대한 경제적 검토나 연구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로서의 발굴 가능성만 제시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한편, 강원발전연구원의 설빙에너지 개발 제안은 지난해 9월 발간된 한국은행 강원본부 경제조사팀의 '강원도형 그린에너지산업 육성 방안' 보고서에 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