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외면한 '교육 편가르기'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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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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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 논란 다시 보기

쉽게 설명하자.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교학사 교과서' 파동은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관이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파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 다음 벌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역사는 객관적 사실인가. 후세 인간의 해석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딱 떨어지지 않는다. 답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객관적 실재는 인간의 해석을 통해 인식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라온 환경, 이해관계, 삶의 방식에 따라 역사를 보는 특정한 관점이 형성된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를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사관을 논하기 전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일제강점기 때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녔던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는 광복 후에도 일본말을 아주 유창하게 한다. 할아버지 곁에는 청년 A씨가 있다. A씨는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싶지만, 외국어 학습력이 다소 부족한 탓에 읽을 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할아버지는 근사하게 보인다. A씨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교육을 받아서 일본어를 잘 하는구나.'

A씨는 주변을 둘러본다. 그의 눈에 넓게 트인 신작로, 근대화된 공장, 항만 설비가 들어온다. A씨는 이것이 모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듯 보인다. 결국은 '일제강점기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앞당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A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최근 우리사회를 둘러싼 기류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에 대한 타당성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이루는데 일제강점기가 기여했다는 관점이다. 이것은 역사를 대하는 하나의 관점이므로 엄연한 사관이다. 그런데 이 사관은 일제가 식민지를 수탈하기 위해 길을 뚫고, 철도를 깔고, 공장을 짓고, 항만을 설비한 것을 교묘하게 포장한다. 그 이면에는 각종 물자를 조선에서 일본으로 빠르게 운송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 숨어있다.

그동안 식민지 근대화론은 학계에서 소수가 주장하는 사관에 불과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문제일 것은 없다. 무엇을 생각하든, 어떤 것을 주장하든, 그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을 갖고 활발하게 토론을 하며 생산과 소멸의 과정을 거듭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때론 생산적일 수 있다. 본시 학문이란 그런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일반화 시도

그런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논쟁 중인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은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비롯됐다. 순식간에 교육부가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이전까지 한국사는 선택과목이었다. 교육부가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뒤 교학사가 발간한 교과서에서 문제가 터졌다. 오류와 왜곡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표현이 가득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에 재검정 기회를 제공했다.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나선 셈이다. 동시에 이미 검정을 통과한 다른 7종의 교과서에도 재수정 지시를 내렸다. 유례없는 일이었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조치였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교학사 교과서는 수정작업을 거쳤지만 그 이후에도 오류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도 오류투성인 교학사 교과서는 전국 고등학교 선정 교과서로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초기엔 학교 10여개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 '절차를 어겼다' 등의 소문이 끊이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해당 학교의 교사ㆍ학생ㆍ학부모ㆍ동문ㆍ시민이 일어났다. 두개의 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철회했다. 주목할 것은 교학사 교과서 철회를 이끌어낸 주체다. 흥미롭게도 운동세력인 진보진영이나 지식인인 학자가 아니다. 해당 학교의 구성원이 교학사 교과서로 배울 수 없다며 자발적으로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무엇이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저지하게 만들었을까. '단위학교 교과용 도서 선정 규정'이다. 이 규정은 단위학교에서 교과서를 선정할 때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의견을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역사교과 교사들이 3배수를 추천해 심의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최종 심의하는 것이다. 바로 이 규정이 교학사 교과서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돌아보면 이 규정은 원래 교과서 출판사의 과당 경쟁과 선정 로비를 막기 위해 도입한 거였다. 아울러 복수 발행을 허용하는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마련한 제도다. 시간이 흐르면서 출판사의 로비가 점차 사라졌고, 이 제도는 외압을 차단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교과서 선정 문제가 부각되면서 국민은 단위학교에 이런 규정이 있으며, 실제로 실행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교과서 선정이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정치권이 나섰지만 이 역시 국민적 감정을 외면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국정 교과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비로소 국민은 알게 됐다. 교학사 교과서를 비롯해 시작된 일련의 혼란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말이다. 황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의 주장은 간단하다. '역사교과서의 국정 교과서화'다. 교과서를 둘러싼 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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