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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봉 한국감정원장 "제2창업으로 조직에 새 바람, 가슴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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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진봉 한국감정원장

권진봉 한국감정원장. (사진=이명진 기자)

 

"심호흡을 세 번 했어요. 그래도 못 참겠어서 '그 무슨 막말이냐'며 언성을 높이려하자 옆에 있던 임원이 허벅지를 쿡 찌르더군요. 허허."

권진봉(60) 한국감정원장은 2011년 초 취임 후 노동조합과 담판을 벌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권 원장은 당시 정부의 공기업선진화 정책에 따라 한국감정원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란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주 업무이면서도 민간과 경쟁하는 분야인 감정평가 업무를 과감히 버리고 조사·통계 및 공시업무총괄 등 공적 업무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직원의 30%에 달하는 감정평가사 등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한 일이기도 했다. 노조의 힘도 대단했다. 한국감정원의 노조 가입률은 당시 80%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직선적 성격의 권 원장과 노조의 만남은 처음부터 거칠었다.

권 원장의 말에 따르면, 그가 구조조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자 노조 측에선 "그건 경영진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린 급여와 복지에만 신경 쓰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발끈한 권 원장은 "이게 어떻게 남의 일이냐"며 "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나가겠다"고 결기를 보였다.

30년 공직생활을 해온 그로선 노조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배석했던 임원이 간신히 말리면서 '사태'의 확전은 피했지만 이 경험은 경영 혁신에 대한 권 원장의 생각을 더 굳게 만들었다.

사실 권 원장이 취임할 당시 감정원의 경영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2011년 1분기에는 직원 급여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권 원장은 결국 비상조치를 선언하고 비상대책반을 운용했다. 또 원장이 직접 1일 감정역, 1일 조사역, 1일 보상역 등을 자처하며 위기의식을 전파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임직원 워크숍만 7차례에다 '勞-Know 회의'나 '노사공동 현안설명회' 등을 잇따라 열며 직원 개개인의 동의를 얻어내려 했다.

이런 노력들은 점차 결실을 맺어 취임 당시 116%였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36%로 감소했다. 2011년 실적에 대한 정부 경영평가에서 기관과 기관장이 최고등급을 받기도 했다. 정원을 12%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시스템을 뜯어고친 결과다.

뿐만 아니라 복리후생이나 경비집행을 꼼꼼히 따져 불필요한 것은 대폭 줄였다. 신상필벌의 원칙하에 인사제도를 과감하게 성과 위주로 전환했다. 공기업 부채와 방만 경영이 이슈로 떠오른 요즘 돋보이는 모범사례인 셈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픔도 있었다. 한 예로 일부 감정평가사들을 중심으로 제2노조 결성을 위한 집단행동 움직임이 나타났다. 감정평가사들은 조직 내에서 기득권화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감정평가 업무를 민간에 이양한다니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권 원장에게 경영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가치였다. 결국 2012년 8월 주동자들을 인사 조치했다. 감정원 내에선 '천안문 사태'라고 부를 만큼 단호했다.

권 원장은 "변화에는 항상 저항이 있기 마련이라며 조직의 사활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위기 탈출에 성공한 권 원장의 다음 목표는 '제2창업'이었다. 감정평가 중심의 사업구조를 벗어나 부동산 조사·평가·통계 전문 공기업을 표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정부위탁업무의 효과적 수행, 흑자경영, 소통과 화합을 제시했다. 주력이자 고부가가치 사업인 감정평가를 민간에 내주고 조직마저 감축한 마당에 흑자경영과 화합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설립 40여년의 관록과 저력은 어려울 때 빛을 발했다. 5종 통계 및 보조지표를 생산하고,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R-one)을 통해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조사 지역도 확대하고 기존의 호가 중심에서 전문가 현장조사 방식으로 개선해 통계의 신뢰도를 크게 높였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지난해부터는 기존에 국민은행이 수행하던 주택가격동향조사 업무를 감정원이 새로 넘겨받게 됐다. 또 각각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LH에서 관리하던 공동주택정보관리시스템(K-Apt)과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RTMS)을 이관받게 됐고 건축물에너지정보체계와 리츠정보시스템 등도 새 업무에 추가할 예정이다.

제2창업의 화룡정점은 한국감정원의 개명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감정원은 '한국부동산원'으로의 명칭 변경을 위한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조직의 면모를 일신한 만큼 이름도 달라져야 한다는 권 원장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사실 감정원 직원들은 "그곳이 보석 감정하는 곳이냐"하는 식의 농반진반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주택가격동향조사기관 등으로 언론보도에서 자주 언급되고 이름도 부동산 전문기관처럼 바뀐다고 하니 직원들의 자부심도 더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감정원의 본사는 현재 대구에 있다. 지난해 8월 공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지방으로 이전했다. 여러모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있는 셈이다. 지방 이전에 따른 우려되는 현상은 아직 없다고 한다. 세종시와 달리 이미 사회인프라가 갖춰진 혁신도시로 옮기다보니 큰 불편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실시된 신입사원 공채에도 수백대의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런 성과들 때문인지 퇴임을 앞둔 권 원장은 요즘 한결 느긋해졌다. 파마 머리 헤어스타일도 공기업 사장치곤 좀 이례적이다. 1978년 기술고시 13회로 공직에 입문해 건설교통부 교통시설국장, 대변인, 건설수자원정책실장 등 정통관료의 길을 걸을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대변인 시절에는 2대8 가르마에 시커먼 얼굴을 하고 카메라 앞에 자주 섰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530운동'을 권한다. 1주일에 5번 이상, 하루 30번 이상, 유산소운동을 20년 넘게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새벽 출근 전에 집 근처에서 1시간 동안 등산을 하는데, 우뇌활동이 활발해져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머리가 맑아져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꾸 떠오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퇴임 후 인생 2막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을 법하다. 일단은 쉬고 싶다며 말을 아꼈지만, 머지않아 또 다른 얼굴로 나타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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