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의 꽤 늦은 나이에 첫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말대로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연출까지 맡게 됐다.
독립영화로 만들려 했던 작품은 배우 송강호가 합류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이야기는 20여 년 전부터 머릿속에서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지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말하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한 번 결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어서 당장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박'.
지난 8일까지 834만 명을 모으며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변호인'의 연출자 양우석 감독 얘기다.
"젊은 친구들을 (특강 등을 통해) 가르치다 보니, 그들이 매우 피로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환경을 조성한 기성세대의 책임도 크지만 악조건을 크게 개선했던 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조건을 성찰해보자는 취지로 '변호인'을 만들게 됐습니다."
양우석(45) 감독은 이렇게 말하며 밝게 웃었다.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 인터뷰 자리에서다.
양 감독은 지난 2000년 MBC 프로덕션 영화기획실에서 PD로 영화계에 입문했지만, 영화감독을 꿈꾸지는 않았다.
한때 "기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생각에 명필름이 제작한 국내 첫 HD영화 '욕망'(2004)의 HD 분야 프로듀서를 했고, 컴퓨터그래픽(CG)에도 관심을 뒀다.
(그는 현재 한 CG회사의 창작기획본부장이다.)
기술보다는 이야기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하자 이번에는 웹툰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V'(2007),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2009), '스틸레인'(2012) 등 3편의 웹툰을 출간한 중견 작가이기도 하다.
애초 '변호인'도 웹툰으로 만들고자 했다.
"제작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표님은 영화를 하시고, 저는 웹툰을 만들겠다'고 제안을 했죠. 그런데 상황이 녹록지 않았어요. 대표님이 '네가 연출까지 해봐라'고 제게 제의했습니다. 그래서 독립영화를 만들까 했는데 송강호 선배의 출연이 결정됐어요. 묘하게 우연이 겹치면서 상업영화가 나오게 된 겁니다."
'변호인'은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을 통해 '속물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인'으로 눈을 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젊은 노 전 대통령을 상기시키는 변호인 송우석의 결기와 오기가 영화를 오롯이 관통한다.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접한 건 5공 청문회 때였어요. 당시 그에 관한 어마어마한 내용의 신문기사가 쏟아졌죠. 편한 인생 걷어차고, 인권변호사가 됐다가 또 그로부터 11년 후에는 주류의 길을 걷어차고 '꼬마민주당'에 남잖아요. 그때, 저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했죠. 이야기는 그렇게 20여 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웹툰의 시나리오는 2011년부터 쓰기 시작했고요."
영화는 실제로 발생했던 부림 사건을 토대로 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은 전부 바꾸었다.
"어떤 분들은 누가 누군지 맞히고 싶어하는데, 저는 일부러 이름을 그렇게(가명처리) 했습니다. 드라마를 허구화하기 위해서였죠. 차동영 경감은 완전 픽션이에요. 차 경감은 주인공의 대립자로서 확실한 신념을 지닌 인물로 만들고자 했죠. 이는 등장하는 판·검사들도 마찬가집니다."
영화에선 시국사건을 접한 송우석 변호사가 속물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인으로 하루 밤사이에 변한다.
지나친 비약 아닐까?
양 감독은 순간적인 깨달음을 의미하는 불가의 '돈오돈수'(頓悟頓修)나 문학의 '현현'(顯現·Epiphany)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믿는 듯 보였다.
"원래 우석은 돈을 벌고 나서 허무함과 갈증을 느껴요. 그런 부분도 물론 찍어놨죠. 그런데 '그런 큰 변화가 갈증 때문에 일어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저는 노 전 대통령도 그 사건(부림사건)을 보고 순식간에 도약했다고 생각했어요. 고전역학에서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도, 갈라파고스제도에서 진화론의 깨달음을 얻은 찰스 다윈도 그렇게 도약했죠."
일각에선 '변호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양 감독은 "저에 대한 오해는 제가 풀어야 할 몫이니 당연히 내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예상되는 "찬양과 경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다고 곁들였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분의 순수함을 찬양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그분을 싫어하는 분은 그분의 순진함을 경멸하죠. 어떤 분들에겐 '변호인'의 이야기가 노 전 대통령의 순수함을 드러내는데 부족하겠지만, 경멸하는 분들의 이해 폭은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 감독은 결국 이 영화가 수렴해야 할 지점은 "분노"가 아니라 했다. "이해와 성찰"이야말로 영화를 통해 그가 건넨 진정한 메시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이해와 성찰이었습니다. 분노는 누구나 할 수 있죠. 분이 며칠은 갈 수 있지만 몇 년을 갈 순 없잖아요. 하지만 성찰이라는 망치를 만나면 그 분(의분·義憤)은 평생 갈 수 있습니다. 저는 특정인에 대해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고자 이 영화를 만든 건 절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와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