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26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동맹국인 미국의 경고, 최측근 각료의 만류, 연립여당 대표의 반대 등 3단계의 '저지선'을 차례로 뛰어넘은, 그야말로 '소신에 따른 계획적인 도발'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행을 결정한 데는 한·중을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거둔 외교성과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한·중과의 관계는 이미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일본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 취임 다음날 참배 검토했다가 일단 보류…10월 참배 결심 후 타이밍 모색 = 아베 총리가 처음 야스쿠니 참배를 검토한 것은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직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출범 다음날인 작년 12월 27일 오전 비서관들을 대동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하는 방안을 생각했지만 이마미 다카야 수석 비서관이 "그러다간 내각이 사흘 만에 망한다"며 강하게 만류해, 계획을 접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그후 올 4월 야스쿠니 봄 제사, 8월 15일 패전일 등 두 차례 주요 참배 계기에 참배를 보류한 아베 총리는 10월 야스쿠니 가을제사를 즈음해 참배를 '결심'했다고 산케이 신문 등이 보도했다.
산케이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10월17∼20일) 전후에 지인 몇 명과 식사를 한 뒤 한 참석자가 '야스쿠니 참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자 "연내에 반드시 참배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당시 이미 참배를 결정해 놓고 미국, 한국 등과의 외교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가며 시기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4일자 요미우리 신문에는 아베 총리가 이미 추계 제사 때 참배하려는 의향을 주변에 밝혔지만, 최측근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제사 개시 전날(10월 16일) 총리 공관을 급거 방문해, 마지막 순간에 제동장치를 밟은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아베의 야스쿠니행에 대한 주변 참모들의 의견이 엇갈린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참배 쪽으로 기울었지만, 스가 장관이 당시 불어닥친 태풍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전했다.
하지만, 당시 이미 아베 총리는 참배와 함께 발표한 담화의 원안까지 마련한 상태였다고 닛케이는 소개했다.
앞서 10월 20일 아베 총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관은 "(취임 이후) 1년 내에 반드시 참배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아베 총리의 연내 참배 가능성을 거론한 바 있다.
당시 '보수층을 겨냥한 언론 플레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결국 하기우다의 발언은 아베 총리의 의중을 정확히 알린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이후 아베 정권은 11월 에토 세이이치 총리 보좌관을 미국에 파견해, 야스쿠니 참배 때 미국에서 나올 반응을 탐색했다.
당시 에토 보좌관의 공식적인 방미 목적은 북한 정세에 대한 의견교환이었지만, 스가 장관으로부터 야스쿠니와 관련한 분위기를 파악해 오라는 '밀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에토 보좌관은 미 정부 고위 당국자로부터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는 답을 들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미국까지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베 총리는 참배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후 아베 총리의 '복심'이자 '신경안정제'로 불리는 스가 장관 등 일부 총리 주변인사가 '참배는 정권 운영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며 보류를 촉구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스가 장관은 하기우다 특보에게 '총리가 참배를 접게 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결국 참배를 결정하고 참배 이틀 전인 24일 스가 장관에게 통보했다.
결국, 설득을 포기한 스가 장관은 참배에 따를 나라 안팎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충격 완화 모드'로 돌아섰다.
그에 따라 아베 총리 측은 참배에 대한 일어와 영어 담화 등을 준비했고, 문구는 참배 직전까지 다듬었다.
◇ 보안유지하다 당일 오전에 관련국에 통보…'최후 저지선' 공명당 대표도 돌파 = 참배를 결정한 후 아베 총리는 '조용히' 참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참배 전날인 25일 아베 총리는 26일 예정돼 있던 내각회의(각의) 개최 시간을 1시간여 당긴 오전 9시20분으로 변경하고, 그에 이어질 인터뷰 계획도 취소해 참배에 필요한 2시간을 마련했다.
물론 참배 계획을 공개하기 전까지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했다.
야스쿠니 신사 측에 '간다'고 통보한 것도 당일인 26일 아침 7시였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또 일본 정부는 한국과 미국, 중국 등에도 참배 1시간여 전인 오전 10시 20분 전후로 참배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 이례적으로 외무성 당국자가 아닌 스가 장관이 이병기 주일대사에게 전화로 통보했다.
이 대사는 참배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또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에게는 당일 아침에, 연립여당 대표인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에게 불과 참배하기 약 30분 전인 오전 11시께 전화로 통보했다.
이때는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참배 계획이 알려진 뒤였다.
당시 야마구치 대표는 "찬성할 수 없다"며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아베 총리는 "(야마구치 대표가) 찬성할 수 없지 않겠나 생각합니다만…"이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전했다.
한편, 요미우리 신문은 아베 총리가 참배를 결단한 배경에는 취임 후 1년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을 모두 방문하는 등 아시아 각국에서 신뢰를 꾸준히 쌓아왔다는 자신감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또 아베 총리는 "중국, 한국과의 관계는 지금 '바닥'이라 참배해도 더는 나빠질 것도 없다. 러시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와도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요미우리는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