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철(왼쪽 두번째) 학예실장이 '청암정'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오른쪽 정자가 충재 권벌이 만든 '청암정'이다. 원래 전체 8칸중 2칸에 온돌방을 들였지만, 여기 방에다 불을 때면 거북이 등에 불을 놓는 격이라 바위가 "뜨거워 죽는다"하며 자꾸 우는 소리를 내 난방을 중단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왼쪽에 보이는 작은 3칸짜리 건물은 서재인 '충재'다. /사진제공=코레일
자동차로는 닿을 수 없는 이곳에 마음을 빼앗겼다. 오로지 기차로만 입장이 허락된 대한민국 두메산골 중 최고의 산간벽지. 경북 봉화의 그 오지에 새로 트레킹 길이 났다. 승부역과 양원역을 잇는 '낙동강 비경길'이다. 철도파업 탓에 접근이 더 험해졌으니 여전히 쉽게 속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운이 좋았다. 민영화를 막겠다며 머리띠 두르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기 전인 이달 초에 다녀왔다. 흐르는 물길과 어깨동무하며 두시간 남짓 걸으니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다. 이왕 갔으니 제대로 '나'를 찾고 싶었다. 하루를 더 머무르며 선비정신이 살아있는 달실마을(닭실마을)까지 내달렸다.
■ 태초의 모습 간직한 낙동강 비경길 난생처음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라는 승부역에 내렸다. 서울역에서 아침 7시45분에 출발해 낮 12시35분에 도착했으니 만만찮은 거리를 달려온 셈이다. 눈꽃열차와 협곡열차 인기 덕에 벼락스타가 됐지만 여전히 이곳은 외딴역일 뿐이다. 때맞춰 등장한 누렁이도 희한하게 다리가 셋이다. 밀렵꾼 덫에 오른쪽 뒷다리를 잃었다는 이 녀석은 신통방통하다. 열차 도착시간을 정확히 알고 미리 관광객을 기다린다는 것. 단 1명의 역무원만 근무하는 이곳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뜻밖의 환대가 정겹다.
기암절벽과 소나무들이 장엄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낙동강 비경길.
철길 아래쪽 다리 건너 먹거리 장터에서 육개장 한그릇 후딱 비웠다. 신발끈 다시 질끈 매고 5.6km의 황홀한 걷기를 시작한다. "동네 어르신들 일일이 찾아 다니며 여쭤봤죠.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끊겨 옛길 찾기가 녹록지 않았어요. 최대한 원형을 살리려고 애썼습니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트레킹 코스죠." 이 루트를 만든 코레일 관광벨트개발운영사업단 김태형 단장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돈도 쏠쏠하게 많이 들었다. 선뜻 뭉칫돈을 투자한 봉화군의 결정이 고맙단다.
흙길이 끝나면 자갈길이 이어지고, 자갈길을 가다보면 어느새 보드러운 모래길이 나타난다. 낙동강은 그렇게 다양한 얼굴을 선물해 준다. 왼편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절벽의 파노라마에 눈을 뗄수 없다. 야트막한 북한산 둘레길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까닭에 낭떠러지 품고 흐르는 물길의 첫경험이 강렬하다. 족히 수십 미터가 넘는 바위덩이에 늠름하게 서있는 소나무도 당당하다.
하늘 향해 곧게 뻗은 춘양목이 한두개 보이기 시작하더니 길은 금세 산쪽으로 이어진다. 등에 땀이 찰 즈음 '리어카 나무'가 나타났다. 예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그냥 버리고 간 리어카가 뽕나무 밑둥에 박혀 20~30cm 가량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뽕나무가 자라면서 아예 리어카를 들어올린것이다. 살아있는건 참 위대하다. 이 녹슨 리어카를 이렇게 품어주고 있으니.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니 구멍 숭숭 뚫린 녹슨 양철지붕 폐가가 두서너채 보인다. 이곳이 각금마을이다.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한때는 족히 10여집 넘게 살았으리라. 호기심이 발동해 살짝 엿보니 대머리 벗겨진 배불뚝이 할아버지 로고가 새겨진 추억의 소주 대병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길잡이 역할을 맡은 김태형 단장은 "여름 한때는 사람이 들어와 살아요. 관광객들 몰려오면 장사라도 해서 돈벌이 하라고 했더니 '우리집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화를 내더라고요"라며 그들의 자발적 고립생활을 전해준다.
정말 오지는 오지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려고 하니 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는 사인이 뜬다. 왼편으로 방향을 돌려 오르니 각금터널이 보이고 백두대간 협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최고의 뷰포인트다. 소나무 잔솔이 쌓여 산속길이 카펫처럼 푹신하다. 가파르게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길도 급해 살짝 인공을 가미했다. 나무 데크로 만든 169계단이다.
'10분 막걸리'로 유명한 양원역. 아마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역일 것이다.
다시 부지런히 걸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역일지도 모르는 양원역에 도착했다. 한사발씩 파는 1000원짜리 막걸리를 들이키고 된장에 배추를 찍어 먹으니 참 달다. 돼지껍데기 안주도 있어 하나 시켰다. 서울 마포 돼지껍데기하고는 또다른 맛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저절도 힐링이 된다. 제발 이곳만은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단절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6일부터 분천~양원~승부~철암 27.7km를 왕복하는 브이트레인 별밤열차(매주 금·토·일요일 밤에만 운행)가 개통되면서 어둠속에 파묻힌 고요한 양원역을 밤에도 즐길수 있게 됐다. 그러나 철도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원래 운행시간표가 차질을 빚고 있다. 반드시 전화(02-2084-7786) 확인후 여행일정을 짜야 한다.
■ 사극 드라마·영화속 단골촬영지 청암정 다음은 달실마을로 가보자.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안동 권씨의 집성촌. 맞춤법상이나 행정구역 분류상 닭실마을이 맞지만 이곳 사람들은 꼭 달실마을로 불러 달란다. 한눈에 척 봐도,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영남의 4대 길지중 하나로 꼽은 이유를 알겠다.
이곳의 국가대표는 역시 '청암정'.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의 피바람속에서도 꼿꼿하게 소신을 지킨 충재 권벌(1478~1548)이 지은 8칸짜리 정자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우뚝 솟아 단아한 풍모를 자랑한다. 그 아래로 수로를 내 물을 돌렸다. 추위에 얼음이 얼면 바위가 깨질 위험이 있어 겨울에는 일부러 물을 뺀다. 돌다리를 건너 청암정에 오르니 중앙정치의 소용돌이속에서 낙향해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학문에 정진했을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호연지기가 온몸을 감싼다.
"우르르 몰려와 사진 한번 찍고 후다닥 떠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해요. '뭐 볼것도 없네'하는 혼잣말을 듣기라도 하면 솔직히 욱 하기도 해요. 의를 지키기 위해 서슬 퍼런 문정왕후에게 맞섰던 선비정신은 살펴볼 생각도 안해요." 충재의 19대 손이며 차종손인 권용철 달실문화유적보전회 학예실장의 하소연이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깨우침의 장소로 생각하지 못하는 여즘 세태에 대한 불만이다.
단아한 풍취가 느껴지는 달실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청암정은 잘나가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다. 사극을 좋아하는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금세 알아챘으리라. 그 아름다움에 반해 '스캔들' '바람의 화원' '음란서생' '동이' 등 내로라 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여기서 찍었다. "반나절 서너시간 촬영에 100만원 정도 받아요. 미리 시나리오나 콘티로 내용을 검토하죠. 슬그머니 옷벗는 야릇한 장소로 쓰이면 안되잖아요. 그러니 사전검열은 필수죠. 또 일일이 마을 어른들 찾아 다니며 허락도 받아야해요." 가끔 막무가내로 촬영하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도 있다. 권용철 실장은 처음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안된다고 정중하게 손사래를 쳤지만 지금은 요령이 생겼다. 깜짝 놀랄만한 엄청난 액수를 부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뒤도 안돌아보고 휑하니 간단다.
이 정자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편액과 현판이다. 미수 허목·매암 조식·퇴계 이황·번암 채제공이 쓴 글씨가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미수의 '청암수석'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청암정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여러번 들은 미수는 한번 방문하려고 했으나 결국 가보지 못하고, 별세하기 사흘 전에 그 마음을 담아 써 준 작품이다. 문화재 도둑이 워낙 많은 탓에 진품은 모조리 떼어 따로 보관하고 지금 걸려 있는 것은 모조품들이라 아쉽다.
청암정 바로 옆에 충재박물관이 있다. 보물 5점 등 국가지정 문화재만 무려 482점이 소장돼 있어 놀랍다. 충재의 과거시험 답안지 부터 한성판윤 교지 등 유물마다 스토리가 넘친다. 갈수록 혼탁한 세상. 대청마루에 꽂꽂이 앉아 눈을 부릅뜬채 지조를 지키라고 꾸짖은 충재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달실마을에서의 한나절은 귀한시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