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미생의 성공, 숨소리도 안내며 도와준 가족과 익명의 취재원들 덕분
- 한때 자신의 젊음을 하얗게 불태웠던 사장들, 후배 위해 공정한 회사 문화 만들어야
-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소통, 무조건 함께 하는 것 아니라 서로 차이 인정하는 것
- 내년 10월 예정 미생 시즌2, 창업과 경영에 관한 전문적인 부분 다루게 될 것■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12월 4일 (수)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윤태호 (만화작가)
◇ 정관용>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작가 가운데 한 분이시죠. 윤태호 씨를 초대했습니다. ‘이끼’라는 만화도 유명하시고. 요즘은 ‘미생’ 상당히 많은 분들이 아마 보셨을 거예요. 직장생활의 교본이라고까지 불리고, 다음 사이트에서 연재를 했는데 지금 누적 수, 조회 수 10억 건을 돌파하고요. 이게 단행본으로 책이 나왔습니다. 9권 정도로 다 나왔는데 이게 최근에 50만 부 판매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미생의 윤태호 작가 함께 모시고 2013년 대한민국에서 한국의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태호 씨, 어서 오십시오.
◆ 윤태호> 네, 안녕하세요. 윤태호입니다.
◇ 정관용> 우선 이 빅히트 축하합니다.
◆ 윤태호> (웃음)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50만 부, 1권부터 9권까지. 9권 나온 게 얼마 안 됐죠?
◆ 윤태호> 정확히 지금 기억이 안 나는데요. 이게 한 1달 반 정도된 것 같아요.
◇ 정관용> 1권 나온 건 작년이잖아요.
◆ 윤태호> 네, 작년에 두 번 같이 나왔었죠.
◇ 정관용> 9권이 나온 게 한 1달 반 밖에 안됐으니까 50만 부가 아니라 앞으로 판매 부수는 쭉 더 늘어나겠네요.
◆ 윤태호> 네, 곧 아마 60만 부 채워질 것 같고요.
◇ 정관용> 그렇죠. 만화책 1권이 이렇게 1만 권 이상 팔리기 어렵다고 그러던데.
◆ 윤태호> 이 책이 인터넷 서점이나 이런 데 가보면 분류가 만화책 코너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실용서 쪽에 들어가 있어서.
◇ 정관용> 정말로요?
◆ 윤태호> 네. 그래서 만화로 읽히기보다는 조금 더 직장인들 생활에 조금은 참고서 같은 이런 개념으로 읽히고 있는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래요. 게다가 누적 조회 수 10억 건이 사실은 더 큰 의미 아닙니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봤다는 거 아니겠어요?
◆ 윤태호> 네, 그렇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봤는데 책이 팔릴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그래서 무료 만화, 인터넷 만화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좀 갖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재미를 확인한 것을 사보는 문화가 있구나라고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 정관용> 게다가 2012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역시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 부분 대통령상. 또 받으셨어요.
◆ 윤태호> 네.
◇ 정관용> 와, 좋으시겠습니다. 소감 한 말씀.
◆ 윤태호> 저 혼자 앞에 나와서 상 다 받고 인터뷰도 하고 그러는데. 제 뒤에 너무나 많이 도와주신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대신해서 정말 감사하다고.
◇ 정관용> 어떤 분들이 그렇게 같이 상을 타야 됩니까? 제일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럼.
◆ 윤태호> 일단 숨소리도 안 내준 가족들.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끔 해 준 가족들하고요. 그다음에 정말 신분을 밝히기 어려운 취재원 분들. 저희끼리는 조언자, 조력자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취재원이라는 말 보다는. 그분들하고 각종 공기업에 계신 분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어떤 쌀 관련 수출입이라든지 만화에 에피소드로 나오는 것들에 대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그런 분들. 특히 코트라 같은 경우에 암만무역관 쪽에서도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데 윤태호 씨가 만화 그리기 시작한지 몇 년 되셨죠?
◆ 윤태호> 올해가 26년째.
◇ 정관용> 허영만 화백인가요?
◆ 윤태호> 네, 허영만 선생님 제자.
◇ 정관용> 제자로 들어가셨다가. 그렇죠?
◆ 윤태호> 네.
◇ 정관용> 직장생활이라고는 해 보신 적이 없죠? 사실.
◆ 윤태호> 전혀 안 해 봤죠.
◇ 정관용> 게다가 이 만화의 소재가 보니까 프로바둑기사가 되려고 하다가 거기에 실패하고 그래서 종합상사 직장에 들어가게 된 직장인의 애환이 쭉 그려지는 것 아닙니까?
◆ 윤태호> 네. 그렇죠.
◇ 정관용> 바둑도 잘 못 두신다면요?
◆ 윤태호> 한 10급 정도 두고요.
◇ 정관용> 10급이 뭐, 두는 겁니까?
◆ 윤태호> (웃음) 그렇죠.
◇ 정관용> 그러면 바둑도 못 두고 직장생활도 안 해 봤는데. 어떻게 이 바둑과 직장을 연결해서 만화를 그릴 생각을 하셨어요?
◆ 윤태호> 미생 같은 경우에는 출판사의 제안이었고요. 그런데 10 몇 년 전에 내기바둑꾼들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책 관련해서 다 사서 읽어보고. 그러다가 제가 수, 바둑수가 너무 낮으니까 미묘한 수의 재미를 못 살리겠더라고요. 그래서 포기를 했고. 또 한편으로는 IMF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고 실패하고 이런 과정을 보면서. 제가 신도시에 살거든요. 그래서 창업이란 뭔가, 돈을 번다는 건 뭔가. 그래서 창업만화를 준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도 회계나 이런 부분에 재미를 주고 싶었는데 그런 쪽의 자료 조사가 좀 용이하지 않아서 포기하게 되었고. 그 뒤에 지금 미생 찍은 출판사에서 제안이 와서.
◇ 정관용> 포기했던 것 2개를 묶어서.
◆ 윤태호> 네. 그래서 아, 이게 인연인가 보구나 싶어서 하게 됐죠.
◇ 정관용> 하겠다.
◆ 윤태호> 네.
◇ 정관용> 이 미생이라는 단어도 사실 바둑에서 쓰는 단어잖아요.
◆ 윤태호> 네, 미생마.
◇ 정관용> 아직 살아 있지 못한 돌들.
◆ 윤태호> 네. 삶과 죽음이 결정 나지 않은.
◇ 정관용> 그렇죠. 아마 못 보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이게 웹툰 형태긴 하지만 저희가 목소리로 구성을 좀 해 봤습니다. 같이 잠깐 들어보고 더 이야기 나누죠.
(웹툰 내용)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양치질하며 한숨을 쉰다. 왜? 회사 가기 싫으니까. 8시 50분에 회사 앞에 도착해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담배를 한 대 피우며 한숨을 쉰다. 왜? 회사 가기 싫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엔 먼저 탐색을 한다. 왜? 임원들 하고 같이 타기 싫으니까. 같이 탔다가 자네 이름이 뭐지, 요즘 뭐 하나. 이런 시답잖은 질문에 답을 못했다간 곧바로 상사한테 연락 가서 깨지니까. 회사 도착해선 탕비실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한다. 왜? 일하기 싫으니까.
◇ 정관용> (웃음) 회사가기 싫으니까. 일하기 싫으니까. 거의 직장이 지옥입니까?
◆ 윤태호> 저희끼리 술 마시다가 우스개로 표현했던 것들인데요. 일하기 싫으니까라기보다는 바로 일하기 싫으니까. 이런 표현인 거죠.
◇ 정관용> 직장에서의 동료 관계, 상사와의 관계, 희로애락 이런 등등을 바둑 한 수, 한 수에 빗대서 연재를 쭉 하셨던 것 아니겠습니까?
◆ 윤태호> 네.
◇ 정관용> 직장에서 그렇다면 제일 좋은 상사란 어떤 상사입니까?
◆ 윤태호> 저도 이제 미생하면서 제일 도움이 됐던 게 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정관용> 나이?
◆ 윤태호> 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저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을 때 공정한 사람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 정관용> 공정?
◆ 윤태호> 네. 공정한 사람이. 그리고 특히 일을 할 때에는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 공정하게 팀원들을 대하고 이런 것이 굉장히 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 정관용> 동등한 기준?
◆ 윤태호> 네.
◇ 정관용> 그런 사람이 많나요? 직장에. 상사 중에.
◆ 윤태호> 대부분 입사를 하고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그걸 꿈꾼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다가 실적을 내야 되고 회사 안에 어떤 조금은 정치의 한 어떤 이면에 사람들 적응을 하다 보면 그런 면들이 좀 훼손된다고 생각이 들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한 태도로 회사에 입사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입사는 그렇게 하는데 살다가 또 직급이 올라가다 보면 변하더라?
◆ 윤태호> 아무래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세상살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항상 시험처럼 오잖아요. 그럴 때 공정함만을 추구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회사는 이익을 내야 되는 집단이기 때문에.
◇ 정관용> 그렇군요. 그리고 반대로 상사가 제일 좋아하는 새내기 직장인들은 어떤 사람들의 스타일입니까?
◆ 윤태호> 찾아서 생각하는 사람. 그러니까 찾아서 일을 한다가 아니라 찾아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는.
◇ 정관용>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제일 조금 답답할 수도 있겠군요.
◆ 윤태호> 네, 미생에도 나오지만 신입사원을 딱 보면 안다. 저는 복사할 때 태도만 봐도 딱 안다. 복사 내용을 읽어보면서 복사를 하는 사람과 무조건 기계적으로 복사를 해 오는 사람. 이렇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뭔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고. 나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지만 우리 팀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계속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한 팀으로써 팀원으로서 자격이 있는 거겠죠.
◇ 정관용> 아까 이게 만화 코너에 있는 게 아니라 실용서적 코너에 있다. 직장인들이 정말 직장생활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이 책들을 사는 것 같다.
◆ 윤태호> 뭐, 배운다기보다는 이 책을 보면 제가 목표한 게 그거였거든요. 자기 자신을 목격하게 만들기.
◇ 정관용> 그렇죠. 아, 이런 게 내 모습이지 이런 거.
◆ 윤태호> 네. 그래서 작품이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만화가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이 작품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역할이죠.
◇ 정관용> 바로 그 대목에서 직장생활도 안 해 보신 분이 어쩜 그렇게 세밀하게 디테일한 상황을 그려내실 수가 있었느냐 이거죠.
◆ 윤태호> 그러니까 사실은 바둑도 굉장히 잘 두시는 만화가 선생님들이 있거든요. 아마바둑 5단, 6단 이렇게 되시는 분들이 있는데. 바둑을 너무 잘 두면 그 미묘한 바둑에서의 아름다운 수를 묘사하기 위해서 자꾸 만화에 기보가 들어간다거나 사활 같은 게 만화에 노출이 된다거나.
◇ 정관용> 들어가요.
◆ 윤태호> 그런데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은 만화를 봤을 때 그런 컷이 들어가면 그건 거의 버리는 컷이 돼버리게 되거든요. 그렇듯이 그래서 저는 바둑을 두는 사람의 태도.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 상황에서 어떤 바둑을 두는지, 이런 태도를 더 좋아했었거든요. 그러니까 회사생활도 제가 만약에 제가 회사생활을 직접 해 봤다면 이런 좀 디테일한 면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오히려 안 해 봤기 때문에 또 관료제라는 것도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아름다운 시스템, 조직 이런 건 없을까를 상상하게 됐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그 관료제 안에서 부딪히는 일들 이런 것은 취재를 통해서 취재원한테 얘기를 들어서 아시는 것 아닙니까?
◆ 윤태호> 제가 먼저 이러이러한 내용을 만들고 싶은데 실제 가능한지, 먼저 물어 보고 가능하다 그러면 그 사이즈 내에서 어떤 경우가 있을까를 같이 앉아서 거의 스터디 같이 하는 거죠.
◇ 정관용> 그렇죠. 그런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 윤태호> 네, 광고홍보대행사 분도 계시고, 상사 쪽도 몇 분 계시고, 물류회사 쪽 분도 계시고.
◇ 정관용> 그런 분들은 절대 실명을 공개할 수 없다면서요?
◆ 윤태호> 네.
◇ 정관용> 공개되면 회사에서 잘립니까?
◆ 윤태호> 그렇다기보다는 그분이 갑자기 공인이 돼버리는 느낌. 이런 걸 받을 수가 있어서. 또 본인 스스로가 원치 않고 그래서 제가 말을 안 하고 있죠.
◇ 정관용> 인터뷰를 준비를 하면서 어떤 기자가 우리 윤태호 씨와 관련된 기사를 쭉 쓰신 것을 봤는데. 윤태호 작가가 취재원이 된 직장인한테 묻고 답하는 과정 그걸 아마 어느 회사에 가서 강의를 하셨던 모양인데. 그 내용을 기사로 쓴 걸 제가 읽었어요. 정말 시시콜콜하게 묻더군요.
◆ 윤태호> 네, 일단은 제가 책상에 돌아와서 후회가 남으면 안 되니까 일단 만나는 자리에서는 다물어 봅니다.
◇ 정관용> 그렇게 취재당하는 인간은 정말 괴롭겠더라고요. 제가 보니까.
◆ 윤태호> 그러니까 최대한 제가 좋은 학생의 모습으로 앉아 있어서 그분들이 보람을 느껴야 되거든요. 자기가 이렇게. 저는 질문을 한 번 하고 나면 그분은 계속 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경청을 해야 되고 좋은 자세를 갖춰야 되는 거죠.
◇ 정관용> 그래도 여러 시간 고문당했을, 그런 모습일 텐데.
◆ 윤태호> 거의 한 7시간은 보통이니까요.
◇ 정관용> 와. 그런데 흔쾌히들 도와주십니까?
◆ 윤태호> 진짜, 흔쾌히 도와주세요.
◇ 정관용> 자기 이야기가 작품화된다는 것에서 또 기쁨도 느끼나 보죠?
◆ 윤태호> 그렇기도 하고 가령 미생 만화 후반부에는 임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분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좀 죄송했던 적이 있었어요. 뭐냐 하면 샐러리맨의 최종적인 꿈은 임원.
◇ 정관용> 별을 달다, 그거죠.
◆ 윤태호> 그 임원을 달았던 분은 임원을 퇴직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까지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 분이 ‘갑자기 좀 슬퍼지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 정관용> 내가 별 달면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드나보죠?
◆ 윤태호> 거기에서 갖게 되는, 그 사이즈가 주는 보람도 있겠으나. 분명히. 그것을 향해서 가기까지의 어떤, 훼손되는 자기 자신도 마주할 수밖에 없을 테고요. 그래서 그런 걸 미리 말로라도 바라보게 만드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취재를 당하면서도 그분들도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겠군요.
◆ 윤태호> 그렇죠.
◇ 정관용> 그만큼 아주 구체적인 취재가 바탕이 되다보니까 많은 독자들이 그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거고.
◆ 윤태호> 네.
◇ 정관용> 그런 현실성, 리얼리티가 있으니까 또 책도 많이 팔리는 거고.
◆ 윤태호> (웃음)
◇ 정관용> 그런 거 아닐까 싶은데. 자, 그래서 이 만화를 쭉 끝내시고, 우리 윤태호 작가는 2013년 대한민국에서 샐러리맨,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윤태호> 개인의 삶은 매우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만 시스템과 그것들이 매우 좀 잘 안 받쳐주는 것 같고. 그다음에 샐러리맨들이 자기 일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없는 회사문화랄지, 이런 게 좀 많이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결국은 문화와 시스템의 문제군요.
◆ 윤태호> 네. 미생 댓글에 보면 ‘회사에 가서 무슨 자아실현을 하러 회사에 왔냐, 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라는 댓글들이 몇 번 있었어요. 그래서 본문 안에다가 ‘회사에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아가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자아를 성취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라고 썼거든요, 그래서.
◇ 정관용> 그렇군요. 그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의식을 다들 느끼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애환이 있다고 그러고 끝나면 술 한 잔 먹고 풀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다 문제의식을 느끼는데 왜 그 시스템과 문화는 안 바뀔까요?
◆ 윤태호> 그 속에 포함된 많은 사람들이 영웅이 되기 싫어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영웅이 되기 싫어한다?
◆ 윤태호> 가령 우리가 시청자가 되고 독자가 되고 관객이 됐을 때에는 항상 그 주인공 캐릭터가 영웅이 되기를 바라잖아요. 영화에 나오는 샐러리맨 주인공은 항상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되고, 사표는 항상 가슴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나 굴하지 않고 사표를 딱 낼 수 있는 영웅을 바라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 저런 이유로 영웅이 되기를 포기하는.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영웅이 된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래서 크게 개선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내려고 하지 않고. 이런 문화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좀 다층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 정관용> 결국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느낀다. 허나 그걸 문제로 제기하기를 두려워한다. 결국은 권력 관계이군요.
◆ 윤태호> 좀 그런 것 같군요.
◇ 정관용> 시스템과 문화의 잘못의 정점은 권력관계군요.
◆ 윤태호>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시스템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약간 좀 희석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
◇ 정관용> 미생의 작가로서 이 시대의 사장님들한테 한 말씀을 하신다면, 무슨 얘기를 제일 먼저 하고 싶습니까?
◆ 윤태호> 본인들이 한때 자신의 젊음을 하얗게 불태웠던. 그러니 사장까지도 됐겠죠. 지금에 있는 젊은이들이 그러한 젊음을 불태울 수 있는 공정한 회사문화와 이런 것들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최근의 기업 문화를 보면 지나치게 회사 외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 우리는 이렇게까지 개선하는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아서. 캠페인, 구호 같은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 정관용> 보여주기. 또 무조건 실적위주. 결과 위주. 이런 것들 말이죠?
◆ 윤태호> 네.
◇ 정관용> 그나마 요즘 그래도 회사 내에 소통이 잘 돼야 회사의 실적도 좋아진다, 이런 인식은 조금씩은 시작되고 있는데.
◆ 윤태호> 네. 그래서 저도 이제 가끔 초청받아서 기업체에 강연이나 특강을 가보면 소규모 그룹의 문화스터디모임이랄지 이런 것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 쪽은 아주 요청이 오면 가급적이면 시간이 허락하면 가려고 하죠.
◇ 정관용> 그래도 실제로 그런 움직임들이 활발한 회사일수록 그 조직 내의 시스템이나 문화, 아까 말씀하신, 그런 게 좀 달라져 있는 걸 느끼기도 하십니까? 어때요?
◆ 윤태호> 네. 얼마 전에 특강 갔던 곳은 회사, 아주 중앙에 도서관을 크게 만들어서 직원들 미팅룸도 도서관 주변으로 쭉 빙 둘러서 만들어놓고. 복지라기 까지는... 복지의 일환이겠죠. 그런 부분들이 잘 되고 있는 것 보고. 그리고 많은 직장인들이 거기를 이용하고 있더라고요. 만들어줬는데 이용하지 않으면 그건 유명무실한 거잖아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거기에 와서 이야기하고, 회의하고, 미팅하고 이런 걸 봤습니다.
◇ 정관용> 혹시 그런 분들하고 얘기를 해 보니까 이런 것을 만들고 나서 회사 내의 문화가 좀 바뀌었다든지, 그런 얘기들도 나옵니까?
◆ 윤태호> 일단은 그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질문을 하거나 저에게. 어떤 강연을 갔을 때. 주저하지 않는 태도, 이런 분위기를 보면서 ‘아, 이 회사는 어떤 발언에 대한 자유로움이 좀 있는 회사구나’라고 느끼게 되죠.
◇ 정관용> 사실 그런 것들을 윗사람이 인식이 바뀌어야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사실은. 그렇죠?
◆ 윤태호> 네. 그런데 뭐, 옛날에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임원급 또는 부장급, 과장급, 이런 분들이 부하 직원들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자기 세대의 노래도 아닌데 막 노래 연습 해 가지고 노래방 가서 같이 부르고. 그런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제가 생각하는 오히려 소통은, 자리를 그들끼리 놀 수 있는 문화를 인정해 주는 것. 이게 진정한 소통인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렇죠.
◆ 윤태호> 내가 따돌려졌다, 이런 생각을 갖는 게 아니고. 너희는 너희들의 문화를 가져라, 나는 나의 문화를 가질 테니. 이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젊은 직장인들도...
◇ 정관용> 알겠습니다. 미생 시즌 2 준비 중이시라는데, 언제 시작합니까?
◆ 윤태호> 내년 10월쯤 시작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아직 한 1년 가까이 남았네요. 어떤 이야기를 다룹니까?
◆ 윤태호> 일단 영업3팀이라는 팀이 독립을 해서 만든 중소기업 회사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처음에, ‘회사라는 건 어떤 매뉴얼로 처음에 조직되는가’에 대해서 매뉴얼 만드는 얘기와 ‘회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기업에 있을 때 회계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 정관용> 그러면 이제 아예 창업하는 이야기로 가는 거로군요.
◆ 윤태호> 창업과 어떤 기업을 읽어내는, 회계를 읽어내는 어떤... 매뉴얼 같은 이야기.
◇ 정관용> 이거 취재하려고 요르단에 갔다가 어제 오셨다고 들었는데. 요르단은 또 왜 가셨어요?
◆ 윤태호> 시즌 1에서 요르단 중고차시장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보통 이렇게 창업하는 사람들은 그전에 자기가 담당했던 바이어와 계속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요르단 대사관측하고 주한요르단대사관측하고 코트라 측의 지원을 받아서 암만무역관 찾아 가서 요르단 시내에 있는 중고차 부품상 이런 분들, 한 20군데 만나서 인터뷰 하고.
◇ 정관용> 그럼 시즌 2의 배경은 요르단이 됩니까?
◆ 윤태호> 한 에피소드에서 요르단 중고차 사업이 나올 거고요.
◇ 정관용> 그렇군요. 요르단을 정한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친숙한 나라가 아닌데.
◆ 윤태호> 아버지가 30년 전에 요르단에 근로자로 다녀오셔 가지고. 그냥 아버지가 다녀오신 곳이니까 썼는데. 그곳이 중동지역에서 한국 차를 수입하는 가장 큰 나라라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래요? 인구도 얼마 안 되는데.
◆ 윤태호> 인구가 한 700만 정도.
◇ 정관용> 글쎄. 그런데 한국 중고차가 그렇게 잘 팔려요, 거기서?
◆ 윤태호> 네, 요르단이 굉장히 자유로운, 개방적인 국가라서 주변국 무역을 굉장히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르단에 수입을 해 와서 터키랄지 이런 곳에...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면 시즌 1에서는 직장생활의 노하우. 자기를 발견하면서 이것저것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책이 됐다면, 시즌 2를 보면서는 ‘나도 한번 창업해 볼까’ 이런 꿈을 꾸게 만드는 책이 될 수 있겠군요.
◆ 윤태호> 그러니까 일의 좀 더 디테일한 본질. 그러니까 어떻게 일을 성사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회사의 회계재무는 과연 어떻게 잘 다듬어야 되는 것인가. 그래서 재무제표 보는 법이랄지.
◇ 정관용> 아주 전문적으로 들어가네요? 이제 실용서가 아니라, 전문서로 분류되겠습니다.
◆ 윤태호> (웃음)
◇ 정관용> 재무회계학 분야에 꽂히는 거 아닙니까, 혹시?
◆ 윤태호> 그럼 안 팔릴 것 같아서.
◇ 정관용> (웃음) 그리고 이게 모바일 단편영화로도 이미 지난 5월에 만들어졌고요. 이게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고요?
◆ 윤태호> 지금 TVN에서 드라마를 제작, 준비 중에 있고요.
◇ 정관용> 언제쯤부터 방영되기 시작합니까?
◆ 윤태호> 목표는 내년 8월~9월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포털에 연재, 또 단행본책자. 게다가 단편영화, 드라마 더 어디로. 영화로도 가능한가요?
◆ 윤태호> 영화 쪽은, 영화로 하기에는 에피소드가...
◇ 정관용> 많아서?
◆ 윤태호> 네, 많고. 또 작고, 약하고, 이래서 자꾸 판권 문의만 오고요.
◇ 정관용> 드라마가 딱 맞군요?
◆ 윤태호> 네.
◇ 정관용> 미생 이후에 꼭 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건지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시면?
◆ 윤태호> 딱히 작품이 있지는 않고요. 포털에 연재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내 나이 또래를 이야기해도 되는 구나. 그러니까 젊은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는 구나.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면 내 또래의 독자들이 와서 즐겨주는 구나. 그래서 제 또래의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