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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유산 답사기, 귀찮았지만 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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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명지대 유홍준 석좌교수

첨성대니 에밀레종이니 백제고분이니 우리의 문화유산들. 사실은 문화유산이라는 게 교과서에 나오는 고리타분한 공부거리, 외울 거리. 우리가 이렇게 인식을 해 왔었는데요. 이 문화유산들을 직접 찾아가서 보고 싶게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딱 떠오르는 한 사람 있죠. 바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작가 유홍준 교수입니다. 올해 정년퇴임을 하세요. 어제 퇴임 강연이 있었는데 노 교수의 긴 얘기를 짧은 인터뷰에 담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짧게라도 소감을 듣고 싶어서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 유홍준 교수 모셨습니다. 유홍준 교수님, 안녕하세요.

◆ 유홍준> 안녕하세요.

◇ 김현정> 벌써 정년퇴임할 때가 되셨어요?

◆ 유홍준> (웃음) 사람들이 다 그렇게 얘기하네요. 생물학적 나이가 그렇게 됐습니다.

◇ 김현정> (웃음) 그러니까 올해 정확히 연세가 어떻게 되신 거죠?

◆ 유홍준> 65세가 되는 학기까지니까 2월로 이번 학기 끝나면 공식적으로 교수는 끝이죠. 2월 28일이죠.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자료사진)

 



◇ 김현정> 항상 하시는 강연이지만 정년퇴임 강연, 정년퇴임이라는 이름이 붙으니까 소감이 굉장히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어제.

◆ 유홍준> 그렇죠. 형식적 긴장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저 그동안에는 그냥 대충 대답했던 것도 좀 명확하게 얘기하고 또 앞으로 살아온 길과 살아갈 길에 대해서 있는 대로 얘기했어요.

◇ 김현정> 주제를 보니까 ‘미술사의 사회적 실천을 위하여‘ 이거더라고요. .

◆ 유홍준> 제가 살아간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제 목표였고, 그래서 답사기 같은 책도 썼고 이제는 나머지 마무리도 충실하게 하겠다는 생각이었죠.

◇ 김현정> 사회를 위해서? 미술의 역사하고 사회적 실천하고 이게 무슨 관계일까, 좀 어렵기도 한데요...

◆ 유홍준> 공부를 위한 공부는 안 하겠다는 뜻이죠. 내가 공부를 대중과 함께 나누었고, 사회적으로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더 신경을 쓰겠다 그런 뜻 정도 되겠죠.

◇ 김현정>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겠다 라는 스스로 얘기하는 다짐 같은 것.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술사학이라는 게 국문학, 경영학, 법학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학문이 아니거든요, 교수님. 처음에 미술사학을 어떻게 선택하셨어요?

◆ 유홍준> 미술사나 미학이나 예술평론은 약간의 낭만끼가 있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나요?

◇ 김현정> 낭만끼 있는 사람. 게다가 방랑벽도 있는 사람 (웃음)...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으셨습니까? “유홍준 군, 공부 잘하는데 법학과나 경영학과 가지.” 이렇게?

◆ 유홍준> 그 당시에는 국어선생님 또 영어선생님 이런 문학성이 있는 선생님들은 오히려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난 미학과가 있는 줄도 몰랐죠. 독문과 갈까, 영문과 갈까 그랬는데 미학과 가라고 해서 한번 찾아가보고 들어갔죠.

◇ 김현정> 오히려 주변의 선생님들이 훌륭한 학자 한 분을 만드신 거네요.

◆ 유홍준> 훌륭한 학자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지도해주셨죠.

◇ 김현정> 그 선택에 지금도 후회는 없으십니까?

◆ 유홍준> 그렇죠. 다만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많이 닥치잖아요. 내가 대학을 졸업하는데 14년이 걸렸으니까. 3선 개헌과 유신헌법 때문에 그랬는데, 그게 이제 생각하면 미술사를 상아탑이 가두는 게 아니고 사회로 끌고나가는 계기 내지 행운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 김현정> 말하자면 그때 그런 기억이 없었으면, 아픈 상처지만. 아픈 상처가 없었으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훌륭한 시리즈도 안 나왔을 수도 있겠네요.

◆ 유홍준> 훌륭한지는 몰라도 안 썼을 거예요. 그게 얼마나 귀찮은데 (웃음).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 가르치고 사회적으로 대접받는데 나에게 긴장감이 생겼겠어요?

◇ 김현정> 그러면 지금까지 달려온 수 십 년 돌아볼 때 제일 잘한 일 하나만 꼽아라 하면 뭐 꼽으시겠어요?

◆ 유홍준> 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을, 그 당시에는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별로 없었어요. 문화재, 역사탐방, 고적기행 이런 말들이 있었던 것을... 알면서 보면 더 즐거울 수 있다는 저의 호소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넣어줄 수 있었던, 7자뿐이 안 되지만. 그것을 동시대 사람들이 가슴에 같이 새겼다는 것 그건 즐겁고 보람있어요.

◇ 김현정>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역시 가장 잘한 일이다, 이런 말씀.

◆ 유홍준> 그건 내가 아니라고 그래도 할 수 없이 돼버렸습니다.

◇ 김현정> (웃음) 어제 정년퇴임 강연 마치셨어요. 유홍준 교수 지금 만나고 있는데. 문화재청장도 지내셨던 분이라 제가 이 질문을 잠깐 안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이 있었고요. 석굴암도 균열이 심각하다는 얘기 들으셨죠? 왜 이런 문제 생기는 겁니까, 교수님?

◆ 유홍준> 어제 강연장에서도 얘기했는데요.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거든요. 문화재청 자체 기술단도 없고 또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조직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당연하지 않겠어요. 일은 업자한테 맡겨놓고 그리고 나중에 책임만 문화재청이 짓는 것은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운영의 문제죠.

◇ 김현정> 업자에게 맡겨놓고 책임만 나중에 장이 지어라라는 것.

◆ 유홍준> 그렇죠. 옛날에 우리 국민소득이 100불, 200불 시절에 국가가 그것을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했던 것을, 2만불 시대가 돼서도 옛날에 없었던 것을 이제 왜 만드냐는 식으로... 정부에서 조직이나 예산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의식 이게 엄청나게 나는 혁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돈을 버는데, 세금을 거둬들이는데는 아주 능숙하면서 그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는가에 대해서는 별 연구,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러니까 교수님 퇴임하시더라도 하실 일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런 측면에서...

◆ 유홍준> 아니에요, 난 책이나 쓸래요(웃음). 그런 것은 선수들이 나와서 하라고 하는데, 아무튼 복지예산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에 문화 복지라는 개념을 집어넣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해야 우리가 문화적으로 복지를 느끼는가. 그 개인에게 돈 나눠주는 게 복지가 아니고 우리의 삶을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도 복지라고 생각을 하면 문화재청에 주는 예산을 아까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문화재청에 주는 예산은 그대로 뭘로 남든 남습니다. 개인에게 주는 건 녹아버리지만요.

◇ 김현정> 이 말씀도 좀 윗분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고. 교수님, ‘책이나 쓰겠습니다.’ 이러셨지만 그냥 책만 쓰지 마시고요. 사회를 위해서, 우리 문화유산을 위해서 좋은 일 앞으로도 많이 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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