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에 이어 고령의 미국인 관광객 메릴 뉴먼이 북한에 억류 중인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이들의 석방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북미 관계 개선의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21일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묘한 메시지를 던졌다.
데이비스 특별대표는 "북한이 우리 국민을 석방하는 단계를 밟는다면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관련, (전과는) 매우 다른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밝혔다.
1년째 억류 중인 케네스 배와 메릴 뉴먼의 석방 조치가 북한의 대미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물론 미국은 자국민 석방 문제가 북핵 문제, 북한과의 관계 개선 문제와 연계될 수 없는 독립적인 문제라는 공식 견해를 갖고 있다.
심지어 미국 국무부는 공식적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법의 존재를 이유로 메릴 뉴먼의 북한 억류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억류 미국인 석방은 자연스럽게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의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북한은 과거부터 미국인 억류자 문제를 철저히 미국과의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지난 8월 말 케네스 배의 석방 문제를 협의하자면서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를 초청했다가 초청을 갑자기 철회한 바 있다.
외교가에서는 당시 미국이 "케네스 배 석방 문제가 북미 관계 개선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수차례 강조한 것이 북한의 불만을 샀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으로서도 자국민 억류자가 북한에 남은 상황에서 북한과 의미 있는 관계 진전을 논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NBC에 출연, "미국이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이 깨달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미국은 작년 말 북한의 핵 활동 중지와 식량 지원을 매개로 한 극적인 관계 개선 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작년 12월 갑작스러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로 긴장 국면으로 급반전됐다.
급기야 북한은 올해 2월 미국은 물론 우방인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어 북한은 '미 본토 핵 타격'까지 거론하면서 상반기 내내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강수를 둠으로써 북미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올해 하반기부터 북한의 '대화 공세' 속에서 대화 재개 조건을 놓고 6자회담 당사국 간의 기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사전 조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한·미·일의 견해와 전제 조건 없는 조속한 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북·중·러의 견해가 충돌하면서 6자회담 재개 시점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데이비스 대표는 회담 재개 전망과 관련, "그것은 북한에 달렸다. 우리가 대화로 돌아가려면 북한은 반드시 핵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활용한 두 가지 핵시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