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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없이 마음의 눈으로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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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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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주왕산 내원동 마을

청송군 내원산방

 

'만약 ~이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겠지만 각다분한 인생살이에서 가정법만큼 떨쳐지지 않는 매혹도 드물다.

인간의 욕심은 무한한 것이어서 현재에 만족하는 이들은 이보다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현재에 불만족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의 통탄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가정을 세우게 된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후회와 가정법과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정법이 흥미로운 것은 가없는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또는 어떤 조건이 주어졌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만 선택하지 않은 쪽에 대한 과정과 결과의 퍼즐을 이리저리 꿰어 맞춰보게 된다는 점에서 가정법 놀이는 분명 사다리타기보다 흥미롭다.

하지만 만약 '전기가 없었다면'처럼, 그 결과에 대한 상상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거대한 가정'을 만나게 되면, 그건 쉽지 않은 승부다. 하지만 전기 없는 세상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내원동 마을이다.

청송군 내원분교

 

경북 청송군 주왕산에 자리한 내원동은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해진 곳.

산골소녀 영자도 휴대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문명의 이기가 광풍처럼 몰아치는 시대에 의심을 품어봄직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 유별난 것에도 카메라를 들이대고야 마는 대중매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 내원동에는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지(奧地)적 요소'가 오히려 이곳을 오지마을로 내버려두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렇긴 해도 촘촘한 일상의 그물에서 빠져나온 도시인들에게 내원동은 여전히 색다른 느낌의 휴식처가 되어 준다.

내원동에 가려면 주왕산국립공원 상의매표소로부터 4km 이상을 걸어가야 한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길이 비교적 잘 닦여있어 큰 수고로움을 요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길 주변의 경관도 운치가 있어 지루한 산행과는 거리가 멀다.

내원동에 이르기까지 시루봉, 학소대,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 등을 만나게 되는데 우선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 같다 해서 붙여졌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학소대는 경사 90도의 절벽으로 주왕산을 한층 운치 있게 만든다.

청송군 선녀폭포

 

제1폭포는 일명 선녀폭포로 불린다. 폭포 주위가 암벽으로 둘러 싸여져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소(沼)는 70평 남짓하게 이뤄져 있는데, 옛 전설에 의하면 소 깊이가 명주꾸리 하나를 다 풀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일명 용폭포인 제2폭포는 두 줄기로 이루어진 2단 폭포인데, 한줄기는 호박처럼 파인 곳에 일단 쉬었다가 다시 떨어진다. 제1폭포에서 3km정도 거리에 있는 제3폭포 역시 2단 작용으로 그 규모가 주왕산 폭포 중에서 제일 크다.

제3폭포를 둘러보고 설치된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내원동 마을이 10분 거리에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전기 없는 마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길을 따라 왼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내원동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을 병풍 삼아 초가 지붕을 올린 집들이 옹기종기 살을 맞대고 있는 전원적인 풍경을 생각한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일단 지붕들이 양철로 되어 있어 시야를 어지럽히는 데다, 내원동 자체가 주왕산 정산으로 가는 등산로와 접해 있어 호젓한 기운도 많이 뺏긴 듯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집마다 사슴할아버지, 예천할머니집, 토배기집 하는 식으로 문패 아닌 문패를 달고 등산객들을 하나라도 더 들이려는 모습도 쓴웃음을 물게 한다.

내원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 왜구의 침범을 피해 들어온 주민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면서부터였다.

그 후손들이 대를 이으며 일제 때는 70여 가구, 6.25전쟁이 끝나고도 50여 가구가 살았다. 그러나 이제 토박이는 드물고 장사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섞였다.

따라서 예전에는 화전민들이 희귀한 약초를 채취하여 시장에 판매하거나 밭을 일구며 살았지만 지금은 등산객을 상대로 차를 팔고, 밥을 팔고, 잠을 재워주는 것이 주요 소득원이다.

내원동이라고 해서 간단없는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전기 없는 마을 내원동을 밝혀주는 제1수단은 여전히 촛불이다. 외지인들에게는 어두워 보일지 몰라도 이미 익숙해진 이곳 주민들에게는 촛불만 켜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렇다고 촛불 이외에 어둠을 몰아내는 다른 장치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스로 불을 밝히기도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태양열을 통한 자가발전으로 백열전구를 켜는 집도 있다. 반장님 댁에는 TV도 있어 공중파 방송도 나온다. 그래서 오후 5시면 해가 넘어가는 긴긴 겨울밤에 마을 사람들은 이곳으로 마실을 나오기도 한다.

청송군 내원분교

 

내원동 마을의 첫 건물은 옛 주왕산초등학교 내원분교의 몫이다.

1970년 3월2일에 설립돼 1980년 3월1일 폐교가 된 이곳이 지금은 등산인들의 쉼터로 이용되는데, 안에는 침낭이 준비돼 있어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숙박도 할 수 있다.

분교 옆의 내원산방은 내원동에서 가장 크고 잘 갖춰진 식당 겸 민박집이다. 전기가 없다 보니 냉장고가 당연히 없고, 따라서 생선이니 고기니 하는 음식은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

대부분 텃밭에서 재배한 나물과 반찬으로 식탁이 꾸며진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지만 기름진 음식으로 몸을 불린 도시민들에게는 당연히 별미일 수밖에 없다.

내원산방에서는 동동주도 내오는데 개나리술을 비롯해 이집에서 직접 담근 술맛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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