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정홍원 국무총리가 5일 "'민중'은 사회주의적 개념"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위해 기본적인 개념까지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홍원 총리는 이날 국회 예결위에서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으로부터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신청 근거로 정당강령을 든 것을 두고 질문을 받았다.
오 의원은 "통합진보당 강령의 내용이 헌법의 국민주권 조항과 뭐가 달라서 위헌이냐"고 물었다. 법무부가 통진당 정당 강령 가운데 '민중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부분을 문제 삼았기 때문다.
이에 대해 정 총리는 헌법에는 '국민'주권이라고 돼 있다며 '국민'은 일반적인 표현인 데 반해 '민중'이란 표현은 '사회주의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민중'은 국가가 계약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회계약설에서 싹튼 개념으로, 영어 'people'의 번역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 이 때문에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귀족들이 브루주아지를 '민중'이라고 불렀었다.
한국에서는 일제 식민기 이후 '역사의 주인'으로 개인이 호명되는 과정에서 '민중'이란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동아일보>의 1920년 창간사에도 "오인(吾人)은 오직 민중의 친구로서 생사진퇴(生死進退)를 그로 더불어 한가지하기를 원하며 기하노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역사적 국면과 사회상황에 따라 단어의 의미들이 조금씩 변하긴 하지만, '민중'은 대체로 억압받는 계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인식돼 왔다. 국가에 앞선 개인 주체라는 의미에서, 사회학 등에서 연구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민중(people)이다.
반면 국민은 일제 때 사용된 '황국신민 약자'로부터 온 것이다. 다만 식민 지배 등을 거치면서 일반에는 국가 자체가 중요하게 인식됐기 때문에, '국민'이란 표현은 거부감 없이 이어져왔다.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민중'은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쓰는 불온한 용어로 인식됐다. 정권이 '민중'이 국가를 이루는 개개인에 의미를 부여하고 권리를 강조하는 걸 경계했기 때문이다.
정 총리의 '민중은 사회주의적 개념'이라는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이같은 개념들을 편의대로 요리했기 때문이다. '민중'이란 표현을 불온시했던 엄혹한 시절이 다시 돌아왔다는 듯한 태도다. 민중이 사회주의적 표현이라면, 현대 민주주의와 정당 이론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가 자신의 책 제목을 '절반의 인민주권'으로 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