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3일. 84년 전 일제치하에서 광주고보 학생들이 일제에 분연히 항거,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날을 기리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하 학생의 날)’이 홀대 받고 있다.
올해 학생의 날은 정부차원에서 교육부가 주최하고 울산시교육청 주관으로 3일 오전 10시 울산 여상고에서 기념식이 열릴 예정이지만 교육부 장관을 대신해 학생복지 안전관이 대리 참석할 예정이어서 정부가 행사를 위한 행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 하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가운데 정부마저 역사적으로 엄연히 현존하고 있으나 학생의 날을 홀대하면서 학생의 날을 기억하는 젊은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정부가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한 이유는 84년 전 전국에서 들불처럼 들고 일어난 항일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날 이였기 때문이다.
민족적 차별교육과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벌였던 11.3 학생독립운동은 규모나 역사적인 의미에서 ‘3.1 운동’, '6·10 만세운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하에서의 3대 항일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생의 날은 휴전 직후인 53년 국회에서 처음 지정된 이후 58년 제6회 학생의 날 기념식까지 정부차원의 학생의 날 공식 행사는 서울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다 독재정권이 강화되면서 73년 폐지됐다가 유신시대가 청산되면서 11년만인 84년 학생의 날이 다시 부활되어 06년에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재 지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학생의 날 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기는 58년 이승만, 60년 윤보선, 64년 박정희, 그리고 35년만인 99년 김대중 등 4명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서 일어난 일본의 끝없는 역사왜곡이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정부가 학생들의 역사교육 강화를 들고 나왔지만 정부차원의 공식행사는 명의만 교육부 주최일 뿐 해마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돌아가며 행사를 주관해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운동의 진원지였던 광주에서는 같은 날 광주시교육감과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유공자들의 후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조촐한 기념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밖에도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일부 시도교육청과 전교조 차원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 기념식과 계기 수업을 진행한다.
이처럼 정부가 학생의 날을 사실상 홀대, 방치함으로서 무늬만 정부 행사이지 지역성을 뛰어 넘지 못하는 지자체 단위의 기념행사에 머물고 있다.
학생의 날 유래는 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광주중학 3학년인 후쿠다 슈조 등의 일본인 학생이 광주여고보생인 박기옥, 이광춘의 댕기를 잡아당기고, ‘센징(鮮人)’이라는 모욕적인 말로 조롱하면서 일어났다.
이를 본 박기옥의 사촌동생인 박준채와 일본 학생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고, 광주고보 학생들이 가세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사건의 원인은 일본 학생의 성희롱에 있었지만, 일본 경찰은 경위도 따져 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일본 학생만 편들고 조선 학생을 일방적으로 구타하였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11월3일, 광주 중·고등학생들이 조선의 독립, 식민지 노예교육 중단, 학생의 자유와 참여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행동이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며 학생들의 저항과 독립운동은 더욱 불타오르게 되었다.
전남 나주역 충돌 사건으로 촉발된 학생독립운동에는 전국에서 모두 3백여 개 학교, 5만4천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으며 1천6백여 명이 구속되었다. 학교에서는 권고퇴학 580여명 자진퇴학 350여명, 무기정학이 2천3백여 명에 달했다.
당시 중등학교급 이상의 학교에 재학하던 학생이 모두 8만9천여 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규모 시위였다.
현재 학생독립운동 기념시설로는 광주와 나주역에 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있으나 시설도 낙후되고 명맥만 유지되고 있어 시교육청은 내년도 준공 예정으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