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레비 "노동자만이 진정한 창조·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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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멍키스패너'…떠돌이 일꾼에 자신 삶 투영 노동·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멍키스패너/프리모 레비/돌베개

 

지옥 같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음에도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프리모 레비(1919~1987)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대인이던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을 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

수용소에서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던 그는 끝내 살아남았고, 고향으로 돌아와 1977년까지 화학자로서의 재능을 살려 공장 관리자로 일하며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7년 고향 자택에서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프리모 레비가 살아낸 극적인 삶의 발자취는 질긴 생명력을 지닌 그의 작품들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인가'(1947)를 비롯해 '휴전'(1963) '지금 아니면 언제?'(1982)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에 대한 사유를 담았으며, 회고록 격인 '주기율표'(1975)는 화학자의 관점에서 자서전적 일화들을 화학 원소의 고유한 성격과 연결시킨 역작이다.
 
글쓰기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했던 레비. 그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불리는 '멍키스패너'(1978)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 작품은 화학자와 작가를 병행하던 레비가 전업 작가의 길을 선언하며 내놓은 첫 장편소설이다. 전 세계를 떠도는 노동자 파우소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에는 평생을 노동자로 살다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다운 노동,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모두 14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화자인 '나'가 일터로 가던 길에 만난 떠돌이 노동자 파우소네와 나누는 대화를 그리고 있다. 멍키스패너는 파우소네가 사용하는 조립 공구로, 그에게는 단순한 공구를 넘어 중세 기사가 허리에 칼을 차듯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징한다.
 
그런 파우소네에게 일의 목적은 돈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그러하듯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순수한 즐거움에 있다.
 
'운명이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개별적이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제외하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은(불행히도 그건 소수의 특권이다) 지상의 행복에 구체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다가가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만이 알고 있는 진리다. 그 무한한 영역, 직업의 영역, 간단히 말해 일상적인 일의 영역은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121쪽)'
 
레비가 보기에 노동자야말로 현대 사회가 잃어가는 인간의 본성, 곧 두 손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조자이자 예술가다.
 
'나는 주인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아요. 단지 나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조립은 내 방식대로 하게 놔두기만 하면 돼요. 아니, 그것은 작업 때문이었어요. 그런 기계를 설치하고 며칠 동안 거기에서 손과 머리로 일하고, 그렇게 기계가 높고 똑바르게, 나무처럼 강하고 유연하게 자라는 것을 보았는데, 나중에 걷지 못하게 되면 고통스럽지요. 마치 어느 여자가 임신했는데 얼마 뒤 비틀리거나 결핍된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같아요. (214쪽)'
 
결국 레비가 얘기하는 진정한 노동은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노동이 아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강요받지 않는 즐거운 것이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 시대, 진정한 노동을 쟁취하기 위한 열쇠는 결국 우리가 쥐고 있다고 레비는 강조한다.
 
'많은 직업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입관과 증오를 갖고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은 해롭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직업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직업의 결실이 일하는 사람의 손에 남아 있도록, 직업 자체가 형벌이 아닌 것이 되도록 싸울 수 있고 또 싸워야 한다. (121,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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