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조립 실습이 한창 진행중인 모습. (사진=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 제공)
위잉~ 기계소리가 실습실을 가득 채웠다. 설계에 맞게 부품을 깎는 수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기계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귀를 기울이고 집중한다.
김 모(18) 군도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짧은 머리에 다부진 체격의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김 군에게는 반성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
철없던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가출까지 하게 됐다. 학교도 안 가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잘 곳이 없을 땐 건물 화장실에 웅크려 자기도 했고 배가 고플 땐 몰래 집에 들어가거나 편의점 등에서 훔쳐 먹기도 했다. 그러다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여러 번.
한국에서는 도저히 자식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김 군의 어머니는 러시아로 김 군을 떠나보냈다. 김 군도 한국을 떠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낯선 러시아에서 당한 외로움과 수모는 한국에서 겪은 바에 비할 게 아니었다. 정말 힘들고 외로웠다.
그러다 우연히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를 알게 됐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주 5일, 낮에는 이론과 기술 수업을 받아야 하고 집에도 가지 못하고 기숙사에서 정해진 규율에 따라 사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한국에만 다시 돌아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김 군은 ‘내가 이 곳 에서도 못 버티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으로 참아냈다. 외부 명사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나도 하면 되겠구나'라는 희망도 갖게 됐다.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최근에는 몇 주동안 집에도 가지 않고 공부를 한 덕에 기계조립 자격증도 획득했다. 생애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껴보기도 했다.
“전 지금까지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단 말이에요. 학교도 대충 다니고...그런데 처음 배우는 기술이라 힘들기도 한데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김 군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꿈이 생겼다.
“러시아가 너무 싫었지만 신기한게 러시아에 있을 때 바라 본 별이 정말 예뻤어요. 그래서 우주에 관심이 생겼어요. 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 벌면 밤에는 러시아어 학원 다닐거에요. 3년 정도 공부해서 러시아의 모스크바 대학에 진학해서 천문학이나 우주공학을 배우고 싶어요.”
‘잘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리는 김 군은 지난 주말부터 러시아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쉬는시간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이나 만화책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각도기가 벌어지듯…조금씩만 달라져도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돈보스코 직업전문학교는 여느 고등학교와는 다르다.
학교를 중퇴한 학생,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한때 실수로 보호관찰 대상이 된 청년 등 ‘학교 밖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학교에서는 기계가공 분야 이론과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 준다. 스스로 사회를 외면하기도 하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던 이들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50여명의 학생과 교장 선생님, 직업훈련 선생님, 사회복지사와 심리치료사 등 10여명의 선생님이 1년여 동안 애정을 주기도 하고 갈등도 빚으면서 부대끼면서 생활을 한다.
한 번도 관심을 받아보지 못했고 실패가 익숙한 이들에게 희망을 알려주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김현선 상담치료사는 “처음에 부적응 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다. 실패만 겪었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아, 나도 이걸 하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 찾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중도에 탈락하는 친구들도 많고 교육 기간에도 사고를 치는 학생들도 많지만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선생님들은 매일매일 학생들을 대하고 있다.
노일종 교무부장은 “우리가 가르치는 만큼 아이들이 따라올 거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각도기에서 5도 10도가 처음엔 매우 좁지만 길게 선을 그어나가면 넓어지듯이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