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검찰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실을 압수수색 중인 28일 오후 홍성규 대변인이 압수수색 사태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정치권에 핵폭탄급 이슈가 터졌다.”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수사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국정원 개혁 등 최근 정국을 뜨겁게 달궈 온 현안들이 이 사건으로 ‘올 킬’ 되는 분위기다.
원내 정당이 내란음모,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사건 자체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한데다 종북딱지가 붙은 현역 국회의원의 일탈, 최근까지 여론의 질타를 받아 온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대반격 등 관심 포인트가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달 넘게 다른 모든 사회 이슈를 잠재웠던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의 경험을 볼 때 이 사건 역시 오랜 기간 이슈 메이커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장외투쟁으로 그동안 정국 주도권을 쥐어왔던 민주당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민주당으로서는 국정원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형성된 전선에 끼어들 여지가 매우 좁아 보인다.
국정원 개혁이라는 깃발을 들고 장외로 나간 터라 국정원의 수사를 지지할 수도, 자칫 종북의 올가미를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에 통진당 편에 설 수도 없다.
“현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라는 대변인의 짧은 논평이 민주당의 고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간 양자 및 다자회담이라는 이슈도 빛을 보기 어렵게 됐다.
야당이 이 같은 난관에 봉착한 것은, 최근의 정치 지형상 청와대와 여당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실을 압수수색 중인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이 의원실로 국정원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황진환 기자)
청와대로서는 27일 김한길 대표가 다시 넘긴 공을 한동안 만지작거릴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원내 복귀를 더 큰 목소리로 촉구할 명분을 가지게 됐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가지고 그동안 공세에 나섰던 민주당은 이번 사건으로 수세국면에 내몰리게 되면서 여야간 공수전환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통합진보당으로서는 사건에 대한 수사 및 법원의 판결과 무관하게 시련의 나날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박주민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을 보면 혐의가 수사초기에는 크게 부풀려졌다가 기소단계에서 상당히 축소되고 선고 때는 그보다 훨씬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는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혐의라서 입증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통진당 관계자들이 설사 무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미 씌워진 딱지로 인한 정치적 타격은 만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정원으로서는 조직의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고 보는 관측이 많다.
국정원이 혐의 입증에 성공한다면 국정원 개혁에 관한 그동안의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실패로 끝나면 국정원은 그야말로 역사적 심판대에 올라야 할 것이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사건의 초기 단계라 단언하기 어렵지만 3년동안 내사한 사건을 국정원 개혁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 터뜨린 것이 여러 의심을 들게한다”며 “국정원이 혐의 입증에 실패하면 위기모면을 위한 공안몰이였다는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박상병 박사 역시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가 많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이석기 의원이 총기를 준비하라고 했다는데 대한민국이 총기를 마음대로 조달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혐의가 입증되면 모를까 국정원의 오판이 드러난다면 국정원은 역사의 이름으로 심판 받게 될 것이고 박근혜 정부 역시 치명타를 입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