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최근 트위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국이 꼬일 때 야당 손 들어주는 여유가 있었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같은 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야당 초선 의원의 면담 신청을 수락해 1시간 40분이나 만난 적이 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여야의 중진 의원들이 정국이 꽁꽁 얼어붙은 이 시점에, 왜, 과거 대통령들의 일화를 들추어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먼저, 이재오 의원의 트위터 글부터 다시 살펴볼까요, 사학법 재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2006년의 에피소드죠?=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정치 상황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4대 개혁입법을 임기 중 반드시 실현한다는 목표로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을 추진했습니다.
탄핵 정국 직후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한 열린우리당은 2005년 12월 정기국회 마지막 날 사립학교법, 줄여서 사학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김원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이후 물리적 충돌을 빚은 끝에 법안이 가까스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새누리당은 곧바로 차가운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영하의 날씨만큼이나 정국이 급랭했습니다.
야당인 당시 한나라당은 재개정 요구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듬해인 2006년 초부터 재개정을 둘러싸고 여야의 격돌이 벌어지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국회운영을 책임지던 사람이 바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김한길 원내대표와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재오 원내대표였습니다. 이재오 대표가 1월 12일, 김한길 대표는 1월 24일 각각 원내대표에 당선됐습니다.
이재오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일화는 그해, 즉 만 7년 3개월여 전인 2006년 4월 29일의 일입니다.
▶ 이재오 의원이 예고도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거예요.= 그렇습니다. 전화를 받은 것은 전날 저녁인데, 이재오 의원은 당시 울산에서 당 행사에 참석하고 김기현 의원, 구청장, 시의원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겁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뜸 "이 대표, 내일 청와대 관저에서 조찬을 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재오 의원은 무척 당황했겠죠.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식사를 요청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날 밤차로 울산에서 급거 상경했습니다.
아침 일찍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 도착하니, 김한길 대표도 와 있었다고 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아침 식사를 한 뒤 커피를 한잔 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김한길 대표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 대표님 이번에는 이 대표 손들어 주시죠"라고 했습니다. 김 대표도 당황했겠지만 이 대표도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한 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야당 원내대표 하기 힘든데 좀 도와주시죠, 양보 좀 하시죠"라고 한 겁니다. 이재오 대표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순간 김한길 대표 얼굴이 굳었다, 분명 모르고 온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야 원내대표를 모두 초대해 놓고, 여당 대표에게 사전 귀띔조차 하지 않은 채 야당에게 양보하라고 권유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김한길 대표는 "대통령님, 당 분위기와 완전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당 분위기는 그게 아닙니다"라고 정색을 한 채 "당에 가서 보고를 해야 되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홀로 남게 된 이재오 대표에게 "둘이서 청와대 구경이나 하자"며 이곳저곳을 안내했습니다.
▶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재오 의원이 밝힌 '두 가지 배운 점'이죠?= 네, 김한길 대표로부터는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당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는 점,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정국이 꼬여 여야가 싸울 때 야당의 손을 들어주는 여유가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 대목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 현재의 정국과 빗대 뭔가 메시지를 던진 것 같은데, 현재의 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종의 충고를 한 것으로 비쳐지네요.= 표현은 에둘렀지만, 내용은 일종의 '돌직구'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한길 대표로부터 배운 점'이라고 표현된 부분은 현재의 당청관계에 대한 지적과 충고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 당 지도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쓴 소리인 셈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점' 이라고 소개한 대목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 개혁이 화두로 등장해 정국이 꼬여가고 야당은 장외투쟁에 나선 이 때, 박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경색정국을 푸는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이재오 의원은 최근 공개적인 행보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주요 사안이 생기면 트위터를 통해 굵직한 메시지를 던져오고 있습니다.
국정원 정치개입 논란과 관련해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를 거론했고, 야당의 장외투쟁이나 영수회담 방식이 논란이 됐을 때에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냈던 몇몇 사례가 있습니다.
▶ 그런데, 이후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어떻게 흘러갔습니까?= 아침 식사 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떴던 김한길 대표는 당으로 돌아와 의원총회를 소집했는데, 당시 당내 분위기가 강경해서 대통령의 요구는 거부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지리하게 논란이 이어지다가 이듬해인 2007년 7월 3일, 즉 6월 국회 마지막 날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여야 합의로 처리됐습니다.
사학법 개정안은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골자인데, 재개정안은 개방형 이사 추천과 관련해 학교운영위원회의 권한이 대폭 축소돼 당시 진보단체로부터 개혁이 후퇴됐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로 김한길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계기가 됐고, 김 대표는 당 안팎으로부터 '해서는 안 될 양보를 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재오 의원이 트위터 글을 공개한 직후 김한길 대표로부터 전화가 결려왔다고 합니다.
내용인즉슨, "원내대표 당시 사학법 재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당내에서 새누리당과 야합했다는 비판을 들었는데, 이재오 의원의 글을 통해 전후관계가 설명이 되니 자신이 누명을 벗은 것 같다"는 요지입니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송은석 기자/자료사진)
▶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얽힌 일화를 소개했어요.= 네, 박지원 의원이 소개한 일화는 1968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45년 전의 일이죠. 서슬 퍼런 3공화국 시절입니다.
당시 야당 초선의원이었던 김상현 전 의원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흔쾌히 수락해 1968년 2월 28일 청와대에서 1시간 40분 동안 면담이 이뤄졌습니다. 야당 초선의원이 대통령을 별도로 만나는 것은 지금도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눈길을 끕니다.
그 자리에서 김상현 전 의원은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처칠 수상은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 야당 지도자를 만나 협의를 하고 조언도 들었다. 박 대통령도 야당 지도자를 자주 만나시라"고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차원에서 지금 김 의원을 만나고 있지 않느냐"고 화답했다는 게 박지원 의원의 전언입니다.
박지원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은 초선 의원의 공개면담도 쾌히 승낙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처럼 어려운 정국을 풀기 위해 김한길 대표와의 단독회담을 수용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 두 여야 중진 인사가 거론한 사례는 정치지도자의 리더십과 소통방식을 지적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해 주신다면?= 원칙을 지킨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는 그런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또 권력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대단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선거 때 도와준 정치권 인사가 자리를 좀 챙겨달라는 취지로 부탁을 하자 "그럴려고 저를 도와주신 건 아니시죠?"라고 반문해서 오히려 무안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반면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