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복집 사건'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닮은 꼴, 다른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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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공무원의 선거개입이라는 점에서 닮은 꼴

김기춘 청와대 신임 비서실장 이 지난 5일 오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을 방문해 황우여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준우 정무수석,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홍견식 민정수석. 황진환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이었던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을 계기로 대선과정에서 일어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과의 유사점이 드러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두 사건은 발생한 시기도 다르고 가담한 주역들의 면면도 다르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닮은 꼴' 중 압권은 국가 공무원들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그것도 국가수반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선거결과를 왜곡하려 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불법선거운동에 노골적으로 앞장서라는 구체적인 모의를 하는 자리였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사건은 국가정보원이 대북심리전이라는 명목으로 인터넷에서 여론 조작에 앞장서고, 선거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다는 점과 서울경찰청이 국정원의 댓글 의혹사건에 대해 축소 수사를 하거나 은폐 했다는 점이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 11일 오전 7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 김영환 당시 부산시장, 정경식 당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일용 당시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기무부대장, 우명수 당시 부산직할시 교육감, , 박남수 당시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부산 초원복집 식당에 모여 김영삼(YS) 당시 민자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모의했다. 공무원의 선거개입금지를 위반한 것이다.

공직자들이 모여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노골적인 논의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의 모의 사실이 당시 정주영 후보측의 녹취로 세간에 공개되면서 구체적인 실행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대선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선전하던 정주영 후보는 역풍을 맞았고 영남권의 표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도 국가정보원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포함한 경찰 일부 수뇌부들이 가담하면서 국가공무원들이 선거결과를 오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사건 이후의 전개도 닮았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고위공직자들이 불법선거개입을 모의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기로 했다는 핵심 내용보다는 '불법도청'에 초점이 맞춰졌다. 보수언론과 방송 등 주류언론들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키는데 앞장섰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관여한 국정원 여직원. 황진환기자/자료사진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사건도 국정원 직원의 불법 대선개입이나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개입 의혹 보다는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본말이 전도되면서 사건의 본질이 흐려졌다. 당시 박근혜 후보도 '여성 인권 침해사건'이라며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몰아세웠다.

두 사건 모두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후보가 치명타를 입을 사건이었지만 오히려 되치기로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이끌어낸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언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닮은 꼴이다.

'다른 꼴'은 사건 이후 수사결과가 달랐고 관련자들의 처지가 달라졌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모의에 가담한 공직자들의 선거법 위반혐의는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관련자 대부분이 승승장구 했다. 김기춘 전 법무장관은 무혐의가 됐고 김영삼 정부에서 경남 거제지역의 공천을 받아 15, 16, 17대 국회의원으로 내리 3선을 했다. 박일룡씨는 경찰청장을 거쳐서 국정원 차장으로 잘나갔고 정경식 부산지검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영전했다.

건설업자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차량에 오르고 있다. 자료사진

 

그렇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관련자들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선거법 위반혐의는 불구속 기소됐지만 개인비리로 구속됐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재판에 회부됐고 국정원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됐다. 불법선거에 개입하거나 획책했다고 해서 승승장구하지 못한 것이다.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국기를 훼손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시국성명을 발표한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서울대 민교협은 성명서를 통해 "18대 대선에서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작업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되는 중대한 사건이고 이후 경찰수사 진행과정에서 서울경찰청이 사건의 진실을 왜곡한 사실까지 알려졌다"며 "이는 민주주의 기본적인 법적 질서를 송두리째 훼손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정원은 전직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리해서 공개하는 정치교란을 자행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근간은 그 결과나 주장에 있는 게 아니라 과정과 절차 및 방법의 정당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초원복집 사건'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여러가지 점에서 '닮은 꼴'을 보이지만 또 여러가지 점에서는 '다른 꼴'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지만 이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이던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그것도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예정된 날 예고도 없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첫날 깜짝 청와대 비서진 개편이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 국정원 국정조사를 무시하는 처사임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나와는 관계없다'는 의지의 표현인지도 모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분명히 이득을 봤다. 그리고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개입 대선개입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규명과 함께 국정원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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