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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기업 본사의 대리점 횡포 문제를 놓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갑을(甲乙) 상생이어야 한다'', ''을(乙)을 지켜야 한다''며 ''갑을 프레임 전쟁''을 벌이고 있다.
포문은 민주당이 먼저 열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당선 직후부터 "민주당은 을을 위한 정당"이라고 선포했다.
전병헌 신임 원내대표도 6월 국회를 ''을의 눈물을 닦는 국회''로 규정하면서 "가맹점과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횡포를 막는 프랜차이즈법과 남양유업방지법 등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갑을 관계를 국회 무대로 끌어내 사회적 약자인 ''을''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새누리당 역시 뒤질세라 프레임 설정에 나섰다. ''갑을 상생''을 내세운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을만 강조하는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차별점을 부각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22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 쪽이 힘의 논리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면 갑을 모두 공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갑을 논란은 경제민주화의 범위이고, 경제민주화는 당의 총·대선 주요 공약인 만큼 당이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남경필 의원은 더욱 각을 세웠다. 남 의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갑을 관계법안은 사실 단편적이고 현상적 문제만 해결하는 법안"이라며 "여당인 우리가 이 문제의 해결을 주도하기 위해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입체적으로 다루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여야의 ''갑을 프레임 전쟁''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인 김재원 의원은 23일 CBS와의 통화에서 "대선 과정에서 복지·경제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을 확실하게 선점해 국민의 평가를 받았고 이제는 개별 이슈별로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면서 "여야가 국민 생활에 밀착한 이슈를 찾고 현장의 소리를 수렴해 입법 경쟁을 벌여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은 정치 본연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특히 "갑을 논쟁 등 최근 여야의 이슈 주도권 잡기와 정책 경쟁은 우리 정치 발전과 선진화의 단초가 될 수 있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마뜩치 않은 반응이다. 여야가 내세운 갑을관계의 프레임이 방향성은 좋지만 주장에만 현혹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을에 방점을 두거나 갑을의 최소한의 공존을 이루려는 방향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하면서도 "주장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닌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경우 갑을의 균형을 맞춘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갑에 방점을 두고 그것을 균형이라고 하면서 담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고, 민주당은 을을 강조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당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입법 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경제적 이슈를 모두 갑과 을의 관계로 보는 것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면서 "고용창출이나 성장, 기업의 투자에 대한 관심 없이 대기업 횡포만 없애면 되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너무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여야 모두 갑의 횡포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막상 6월 국회에서 갑을 프레임에만 매몰돼 본질이 훼손되거나 다른 주요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정쟁의 구태를 되풀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