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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기둥''이 ''차별기둥''으로, 우리의 볼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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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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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볼라드(bollard)는 자동차가 인도(人道)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차도와 인도 경계면에 세워 둔 구조물을 가리킨다. 이 밖에 운반용 손수레나 유모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설치한 기둥 모양의 구조물(지하철, 백화점, 마트)도 볼라드라 부른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보호기둥''이다. 볼라드의 기원은 배를 묶어 두기 위해 부두에 설치한 기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을 만들어 볼라드 설치기준을 밝혔다. 높이는 80~100cm 내외, 재질은 보행자가 부딪혀도 다치지 않도록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를 써야 한다.

볼라드의 간격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1m 50cm 이상 너비를 두어야 하고, 볼라드 전방 30cm 에는 시각장애인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점자형 블록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볼라드들은 돌이나 금속으로 만든 것이 많고 볼라드 앞에 점자형 블록을 두어 시각장애인을 보호하는 건 보기 드물 정도이다. 모두 위법한 볼라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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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기둥''이 ''차별기둥''으로

대전에서 휠체어 장애인 최 모 씨는 2009년 둔산동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 높이 40cm쯤 되는 대리석 말뚝이 마트 출입구를 빙 둘러 막고 있는 탓에 한참을 들어가지 못하다 시민들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볼라드를(무게 100kg가량)를 밀어 길을 내준 덕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대형 마트들은 손수레, 쇼핑 카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볼라드로 막아놓고 있다. 주 출입로가 1m 50cm 이상 열려 있다면 나머지 부분은 볼라드로 막아도 법에 저척이 안 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소방법'', ''건축법'' 등을 종합해 볼 때 대형마트의 볼라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장애인 차별의 문제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최단 거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이 멀리 돌아가거나 다른 출입구를 찾느라 헤매게 하는 것은 불평등의 조장이다.

그 다음은 장애인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도로 턱을 없애고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는 마당에 진로를 막고 시각장애인의 사고위험을 높이는 것 역시 불평등의 조장이고 시대적 역행이다. 만약 화재 등의 재난이나 긴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장애인의 신변이나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또 유모차의 통행을 방해하고 모든 고객을 잠재적인 손수레(카트) 절도용의자로 간주하는 문제 등을 안고 있다. 재래시장을 고사시키며 손님을 빨아들이는 대형마트가 자기네 손수레를 지키기 위해 이런 장애물을 설치해도 되는 것인가?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해 친절하게 안내도 하고 손수레 유출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사건으로 대전 지역 16개 장애인 단체가 참여한 볼라드 철거공동연대가 결성됐고, 볼라드 철거운동으로 대형마트 2곳이 볼라드를 완전히 철거했다.

지난해 6월에는 안산에서 시각장애인 김 모씨가 길에 설치된 볼라드에 걸려 넘어지며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었다. 높이도 낮고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위법한 구조물이었다.

안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판결은 패소했다. 장애인 단체 등이 항소를 해놓고 있는 중이다.

볼라드는 자동차로부터 교통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인데, 가장 약자인 시각 장애인에게 이동권과 신체를 위협하는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위에 설치된 볼라드가 송파구 횡단보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복지사회로 가자며 안전하게 길 걷는 것 마저 막아서면 어쩌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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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는 나무 기둥만이 아니다.

길과 건물 입구에 세워진 기둥만이 볼라드는 아니다. 장애인과 우리 사회 약자들의 삶을 어렵고 아프게 만드는 모든 것이 볼라드이다.

지난해 11월엔 충주 시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시각장애 학생 12살 김 모 양이 의자 등받이와 팔걸이 사이에 목이 낀 채로 숨진 채 발견됐다. 부모는 집근처에서 시각장애 딸을 교육시킬 곳을 찾지 못해 멀리 있는 합숙학교로 보냈다 딸을 잃고 말았다.

장애 이웃은 배움이 더욱 필요하고 배려를 받아야 하지만 교육제도와 예산은 대학입시만 바라보고 있다.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또래들과 함께 배울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하고, 특수학교도 지역마다 더 세워야 한다.

지난 6일에는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증언대회가 열렸다. 오랜 동안 벌어져 온 법인의 비리와 인권침해를 직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고발하면서 실태가 드러났다. 그러나 양심선언 직원들은 즉시 해고됐다. 관련기관은 감사에 들어갔고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왜 미리 보호하지 못하는 걸까?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는 어떤 것일까? 증언에 따르면 소변을 많이 본다고 물을 안 주고, 묶고 때리고 목욕탕 욕조에 남녀 장애 어린이 23명을 한꺼번에 몰아넣고 20분 내로 목욕을 끝내라 윽박질렀다 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공개된 장소에서 중증장애인을 알몸인 채로 목욕을 시키기도 했다. 장애인이면 수치심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수치심을 배려해 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미리 막아내지 못하는 걸까?

때로는 정부의 장애인 정책도 볼라드가 되고 만다. 지난해 10월 뇌병변 장애인이면서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가로 일하던 김 모씨가 서울 행당동 원룸형 숙소에서 불이 나 119에 신고하고 빠져 나오려 했으나 원격조종기로 문을 열지 못해 숨졌다. 밤 시간 숙소에서 보살펴주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3시간 뒤였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제도는 예산을 줄이기 위해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축구경기처럼 타임아웃을 적용한다. 망가진 볼라드이다.

장애인의 30%가 하루 하루 생계를 꾸리기조차 힘든 처지이다. 장애인 연금만이 그나마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장애인 연금을 기초연금화해 지급액을 현실에 맞게 대폭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 제대로 지켜야 한다. 공약을 던져놓고 지키지 않으면 그 공약 때문에 다른 복지혜택이 막힌 채 시행되지 않는다. 그것도 볼라드이다.

장애 이웃들이 가야할 곳에 가지 못하도록,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에 접근 못하도록 막아선 볼라드들은 사회 곳곳에 무수히 꽂혀 있다. 그리고 이런 볼라드에 관심 두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도 망가진 볼라드로 굳어버릴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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