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잊으라고 해서 잊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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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안산·팽목항·노란 리본의 망각곡선

세월호 사고 4주기를 앞둔 지난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약 4160여 명이 참가하는 노란리본 플래시몹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기차는 달리고 달려 알자스 땅을 지난다. 일순간 밖에서 불리는 역 이름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슐레트슈타트, 뮐하우젠, 탄… 여기에서 1만 명, 저기에서 1만5천 명이 사망하고, 보주 산악지대에서 유령이 되어 은빛 안개 속을 배회하는 10만 혹은 15만의 영혼. 칼에 찔려 총탄에 맞아 독가스에 취해…. 나는 다시 낙담하고 말았다.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알자스 지방의 작은 도시 귄츠바흐에 머물고 있던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를 만나 예술과 자연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쓴 글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도시와 산악지대 마다 세계대전으로 무참히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이 배회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월호'라는 선명(船名)과 '안산' '팽목항'이라는 지명과 '노란 리본'의 상징 역시 다를 것 없다. 츠바이크가 기차를 타고 지나온 알자스 땅의 지명과 차창 너머 산악지대를 보며 낙담했던 것과 같다. 과거의 참상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영혼 속에 고스란히 박혀있기에 비극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4년의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고도 남을 상처라고 말한다. 그러나 망각의 속도는 사건의 원인에 따라 달라진다. 기억의 실험연구를 통해 '망각곡선'을 발견한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는 기억이 강할수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노환의 부모나 불치병에 걸린 가족의 사망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어서 유가족들의 망각 속도는 사회통념처럼 일정기간이 지나면 안정단계로 접어든다. 세월호의 억울한 죽음은 망각곡선의 기준을 벗어나 있다. 의혹과 울분과 사회갈등과 정치적 요소까지 더해 기억이 강하다. 망각의 속도는 멈춰있거나 아주 느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나, 스티커를 부착한 자동차를 향해 충분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왜 세월호에 매달려있느냐고 말한다. 저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망각곡선에 대한 이해가 극명하게 대비된 현장이 신앙 공동체였다는 사실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 크리스천의 80%가 다니던 교회를 버렸다. 신앙 공동체는 유가족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했다. 유가족의 입장보다는 사회통념에 기울거나 동조했다. 유가족들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이며 현실적인 공동체에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들은 별난 사람 취급을 당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유가족과 신도들 간의 괴리감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슈바이처를 만나고 돌아오던 츠바이크는 기차 안에서 통렬하게 반성한다. 정신의 영역에서 위대한 예술을 창조해 온 인류인데, 그 사람들이 어째서 지난 숱한 세월 동안 가장 단순한 비밀을 배우지 못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과 인간은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의 고삐를 늦추면 안 된다고 호소한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노력은 점점 퇴보하고 있다. 세월호는 모두가 짊어져야 할 공동의 유산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반성은커녕 오히려 외면하려 한다. 정치 논리와 좌우이념으로 해석하려 든다.

세월호, 안산, 팽목항, 노란 리본… 이름만 들어도 낙담되고 가슴이 울렁이는 것이 정상이다. 4년이나 됐으니 이제 거둬버리라는 말은 폭력이다. 공감하고 기억할 만한 일치된 역사로 서기까지는 잊을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잊으라고 해서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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