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제왕적 대통령의 흑역사와 개헌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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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15일 오전 피의자 조사 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14일 검찰에 소환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출두 직전 이같이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말한 '역사'는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검찰소환조사를 받은 역대 대통령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5번째다.

중간에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만 빠졌다.

정권교체기에 대통령 가족이 사법처리된 것까지 포함하면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예외가 없다는 점에서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는 개인보다는 제도의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되면 마치 제왕처럼 아무도 견제하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데서 불행이 싹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인식은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국정농단사건을 겪으면서 국민들 사이에 널리 확산됐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각당 대선후보들이 하나같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며 오는 6월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고 경쟁적으로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이러한 공약이 지켜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국회에 헌법개정·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두고 1년 이상 개헌논의를 해왔지만 공전만을 거듭하고 있다.

각 당에서는 개헌안을 내놓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다른 당에 대해 책임공세만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답답함을 느낀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가 나서지 않으면 오는 21일 정부의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며 구체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이는 다분히 국회에 대한 압박용으로 보인다.

개헌안은 법상 정부도 발의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 2/3 이상의 동의가 없으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 가운데 100명만 반대해도 국회 통과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는 것처럼 개헌도 때가 있다.

국정농단사태를 겪으면서 30년 전의 헌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면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합의를 끌어모아 개헌을 이뤄내는 것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늦추게 되면 개헌 타이밍은 지나가게 된다.

개헌시기와 관련해서는 각당 대선후보들의 공약대로 오는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헌의 내용이고 그에 대한 여야간 합의와 국민의 동의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면 석달 밖에 남겨놓지 않은 지방선거로 굳이 시한을 못박을 필요는 없다.

개헌은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초석을 놓는 것인 만큼 국민 사이에 충분한 협의와 숙의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

야당은 정부의 개헌안 발의에 대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자체 개헌안을 내놓고 여당과의 개헌협의에 본격 나서야 한다.

여당도 야당에 대해 책임공세만 펼칠 것이 아니라 파트너로 끌어안고 진지하게 협의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때를 놓치게 되면 대한민국 헌정사에 중대한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조사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30년만의 개헌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말처럼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고 제왕적 대통령의 흑역사가 종식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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