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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전 '잔혹 헬조선'으로 퇴보한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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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7집 음반 '아, 대한민국'으로 돌아본 2016년 대한민국 풍경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 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 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가수 정태춘(62)이 26년 전 냈던 7집 음반 '아, 대한민국…'은 군사 쿠데타로 잇달아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으로 만신창이가 된 당대 한국 사회의 민낯을 가감없이 들춰낸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그 잔혹한 풍경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등이, 끔찍한 국정 농단으로 민주주의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놓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략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 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 '아, 대한민국…' 중에서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테지만, '투사'로도 잘 알려진 정태춘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노래를 내놓으며 민주화를 열망하던 당대 시민들과 함께 호흡했다. 1990년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에 반대해 불법 복제 테이프로 만들어 발표한 음반 '아, 대한민국…'은 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구나// 더 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압제의 칼바람이 거짓 역사되어 흘러도/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구나// 여기 한 아이 죽어 눈을 감으나/ 남은 이들 모두 부릅뜬 눈으로 살아/ 참 민주, 참 역사 향해 저 길/ 그 주검을 메고 함께 가는구나' - 수록곡 '일어나라, 열사여' 중에서

그렇게 정태춘은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사전검열 제도와의 긴 싸움에 앞장섰고, 결국 1995년 위헌 결정으로 사전검열이 폐지됨으로써 음반 '아, 대한민국…'도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가수 정태춘(사진='정태춘 박은옥' 사이트 화면 갈무리)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대중음악웹진 '이즘'에서 정태춘을 두고 "격동기인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겪고 나서 그는 직설에 대한 뚜렷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며 "추상적, 과거 지향적 언어의 나열은 종지부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정태춘의 "직설에 대한 뚜렷한 자신감"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이 '아, 대한민국'이다. 그 중에서도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는 신문 기사의 내용을 건조하게 낭독하며 시작하는 '우리들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오롯이 드러낸다.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중략)//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 '우리들의 죽음' 중에서

임진모 평론가는 '우리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리 천박한 부자라도, 인간이라면 일말의 동정심이 있다면. 조금의 측은지심이 있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곡"이라고 평했다.

'우리들의 죽음' 말미에는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지상의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흐른다. 그 위로와 용서의 말은 세월호 참사와도 겹치며, 어른들의 반성, 더 나은 세상를 만들려는 행동을 요청하고 있다.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 "여기 패배와 순종, 체념과 그 비굴…이 애비의 죽은 의식에 내리쳐라"

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26년 전 나온 이 음반의 노래들은 2016년 헬조선에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만연한 정치·경제·사회 부조리를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비판하면서도, 정당한 분노가 앞당겨 가져올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까닭이다.

'그대 알고 있나/ 노동하는 부모 밑에 노동자로 또 태어나는/ 저 아이들, 아이들/ 그래, 저들은 결국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 '그대, 행복한가' 중에서

'저 망치, 몽둥이를 빼앗아라. 이제 너희들의 것이다/ 이 더런 집들을 때려 부수자, 부숴, 부숴, 부숴 버려/ (그만!) '이젠 또 무엇을 부술까요?'/ 여기 패배와 순종, 체념과 그 비굴/ 이 애비의 의식에 내리쳐라/ 이 죽은 의식에 내리쳐라, 쳐라, 쳐라/ 이제 바로 시작이다/ 이제 바로 시작이다/ 우리 세상, 우리 세상, 우리 세상, 우리 세상' - '우리들 세상' 중에서

전국 각지의 광장에 운집해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는 시민들의 분노는 이들 노랫말과 공명하고 있다. 끝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식을 믿고 있는 시민들이 빚어낼 힘을 노래한 '황토강으로'의 가사 전문을 소개한다.

'저 도랑을 타고 넘치는 황토물을 보라/ 쿨렁쿨렁 웅성거리며 쏟아져 내려간다/ 물도랑이 좁다, 여울목이 좁다/ 강으로, 강으로 밀고 밀려 간다/ 막아서는 가시덤불, 가로막는 돌무더기/ 에라, 이 물줄기를 당할까보냐/ 차고, 차고 넘쳐 간다/ 어여 가자, 어여 가/ 구비구비 모였으니/ 큰 골짜기, 마른 골짜기 소리 지르며 넘쳐 가자/ 어여 가자, 어여 가/ 성난 몸짓 함성으로/ 여기저기 썩은 웅덩이 쓸어버리며 넘쳐 가자/ 가자, 어서 가자, 큰강에도 비가 온다/ 가자, 넘쳐 가자, 황토강으로 어서 가자/ 가자, 어서가자/ 가자, 넘쳐가자/ 어여 가자, 어여 가, 쿠르릉 쾅쾅 산도 깬다/ 옛따, 번쩍, 천둥 번개에 먹장구름도 찢어진다/ 어여 가자, 어여 가, 산 넘으니 강이로다/ 강바닥을 긁어 버리고 강둑 출렁 넘실대며/ 가자, 어서 가자, 옛 쌓은 뚝방이 무너진다/ 가자, 넘쳐 가자, 황토강으로 어서 가자/ 가자, 어서가자/ 가자, 넘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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