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 김익환 씨 ''7일간의 고문, 36년간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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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1971년 9월 21일 여수 화정면 백야리 외딴 섬에 15명의 남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다짜고짜 두 여인을 끌고 갔다. 몇 시간 후 40대의 면사무소 간부도 영문도 모른 채 뒤따라 왔다. 이들 3명은 밀폐된 방에 따로따로 갇힌 채 일주일 넘게 온갖 폭언과 끔찍한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20대의 여성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성학대까지 받았다.

한 마을에서 단란하게 살던 김익환씨 가족의 간첩단 조작사건의 서막이다.

당시 42세인 김익환씨는 화정면사무소 부면장으로 촉망받는 공무원이었다. 중앙정보부 여수출장소는 당시 섬마을에 월북한 간첩이 있다는 주민의 제보를 받고 김씨와 김씨의 제수 강덕례(당시 32세)씨, 김씨의 조카딸 김정례(당시 26세)씨 등 3명을 무작정 잡아들여 고정간첩 혐의를 씌우려 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최근 발간한 조사보고서에서 중정 직원들이 지난 71년 월북간첩 혐의로 김익환씨 가족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연행은 물론 불법 구금, 고문과 가혹행위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또 국가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인권유린에 대해 사과와 화해를 하는 등 적절한 조치와 가혹행위로 입은 피해를 구제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신체적ㆍ정신적인 후유증을 치료하는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씨 등 3명은 중정 여수출장소 밀실에서 "북한에 갔다왔잖아, 대답해"라는 등 고정간첩을 시인하는 진술을 강요 받으면서 몽둥이로 온 몸을 맞고,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했다.

구타 당하고 실신한 조카 딸은 온몸이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옷을 달라는 요구에 중정 직원들은 ''간첩이라고 시인하면 옷을 주지''라며 간첩 혐의를 계속 뒤집어 씌웠다.

간첩 시인을 강요하는 고문이 일주일째 접어들 무렵 옆 마을에서 진짜 월북자가 잡혀왔다. 끔찍한 고문이 끝나는가 싶더니 석방 조건으로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들이대며 서명을 강요했다.

진범이 잡혀 1주일 만에 이들은 간첩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고문후유증과 ''간첩가족''이라는 누명은 평생 이들의 삶을 어둡게 만들었다.

조카 딸은 고문으로 받은 충격으로 60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남자 기피증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다. 여기에 심각한 정신적 고통으로 공포와 악몽에 시달려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씨 가족들은 이 간첩단 사건을 계기로 ''빨갱이 가족''이라는 누명 때문에 마을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는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이같은 ''간첩가족'' 조작사건은 당시 12살의 나이로 초등학생이던 김씨의 조카 김기웅(51ㆍ광주시 월산동)씨가 지난 2006년 6월 진실화해위에 진정을 하면서 김씨 가족의 누명과 억울함이 풀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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