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하던 시대였으나 이제는 건강도 '구독'하는 시대가 되었다. 매달 맞춤형 영양제가 집으로 배송되고 인플루언서들의 공동 구매가 일상이 된 오늘날, 정재훈 약사는 신간 『건강 구독 사회』를 통해 우리가 건강을 관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건강이라는 이름의 '불안'을 구독하고 있는 것인지 묻는다. 특히 약사로서 그는 건강기능식품이 약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대중의 막연한 믿음이 거대한 착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약보다 독할 수 있는 영양제, '건강기능식품'의 착시
'건강비책' 정재훈 약사 편 캡처대중은 보통 '약'이라고 하면 부작용을 걱정하지만, '영양제'는 해는 없고 도움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 약사는 동일한 성분인 오메가3를 예로 들며,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된 오메가3 설명서에는 '급사'와 같은 무시무시한 이상 반응 보고가 적혀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똑같은 물질임에도 건강기능식품에는 이러한 위험 표시 의무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끼는 구조적인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타민C 역시 이러한 착시의 대표적 사례다. 의약품으로 허가된 비타민C 한 알의 최대 함량은 1천mg이지만, 건강기능식품은 한 포에 3천mg이 넘는 고함량 제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정 약사는 "약보다 용량이 3배나 높다면 부작용 위험이 낮을 수 없다"며, 문서화된 위험 표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영양제를 약보다 부드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천연'이라는 영원한 마케팅 도구와 심리적 편향
'건강비책' 정재훈 약사 편 캡처정 약사는 '천연'과 '자연'이라는 단어가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몇 배로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성분이 동일한 두 약 중 '천연'을 고르겠냐는 질문에 성인 70% 이상이 천연을 선택한다는 연구 결과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편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 약사는 "담배도 천연이지만 독성이 강하듯, 자연 유래 성분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하거나 효과가 높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SNS 인플루언서들이 주도하는 공동 구매 시장은 이러한 심리적 취약점을 파고든다. 전문적인 자정 작용 없이 미려한 외모와 화술로 포장된 건강 정보들이 소비자들을 후킹하며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약사는 "제품에 자연이나 천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나에게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려는 의도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범생 공부법을 따라 하면 망한다' 영양제의 환원주의
'건강비책' 정재훈 약사 편 캡처건강해 보이는 누군가가 먹는 단 하나의 비결을 찾아내려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북극 이누이트족의 혈관 건강 비결을 오직 오메가3 하나로 규정하거나, 불가리아 장수 마을의 비결을 유산균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생태계를 단 하나의 성분으로 줄이려는 '환원주의적 오류'에 해당한다. 정 약사는 "한국인은 이미 전 세계에서 생선을 가장 많이 먹는 국가 중 하나이므로, 보편적인 식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오메가3 보충제는 이득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특수한 그룹에게는 영양제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비만 치료제 신약을 복용하며 식사량이 급감한 경우나, 치아가 약해져 제대로 된 식사가 어려운 독거노인, 그리고 태아와 영양을 공유해야 하는 임산부 등이 그 대상이다. 정 약사는 "모범생이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고 성적이 오르지 않듯, 평범한 식사를 잘하는 일반인이 영양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불안을 끊어내는 연습, "잠시 영양제를 멈춰보세요"
'건강비책' 정재훈 약사 편 캡처정 약사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불필요한 불안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특정 영양제를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건강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오히려 그 영양제를 잠시 끊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삶이란 무언가를 자꾸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공포를 걷어내고 일상의 음식을 즐겁게 누리는 여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약국이나 병원을 방문할 때 자신이 복용 중인 영양제 리스트를 가져가 전문가에게 점검받을 것을 권장했다. 홍삼이나 마늘 농축액처럼 몸에 좋다고 알려진 성분들도 당뇨약이나 혈액 희석제와 충돌하여 저혈당이나 출혈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 구독 사회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구독해야 할 것은 제품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여유와 올바른 정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