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와 가스값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내 기름값과 산업 원가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석유 가격이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보고, 대체원유 확보와 비축유 스왑, 공급망 점검을 병행하며 대응에 나섰다.
"국내 유가, 상승폭 가파르진 않지만 계속 오를 것"
연합뉴스산업통상부 중동전쟁 대응본부는 7일 브리핑에서 국제 에너지 시장이 여전히 큰 변동성 국면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오전 7시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109.70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12.79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월 27일과 비교하면 브렌트유는 51.4%, WTI는 68.3% 상승했다. 아시아 현물가스 지표인 JKM도 18.31달러로 71.2% 뛰었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트럼프의 발언, 그리고 미국과 이란의 상황 변화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며 "크게 변화된 내용은 없고 계속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차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국내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며 "생각보다 상승폭이 가파르지는 않지만,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서울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9.88원 오른 리터당 2000.27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값이 2천 원을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25일 이후 3년 8개월여 만이다. 서울 경유 평균 가격도 11.61원 오른 1979.61원을 기록했다.
산업부 자료로 봐도 상승세는 뚜렷하다. 2차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지난달 27일 이후 이날 오전 7시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는 1934원에서 1961.56원으로 7.8%, 경유는 1923원에서 1952.11원으로 7.5% 올랐다. 전쟁 전인 2월 27일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15.9%, 경유는 22.2% 상승했다. 서울 휘발유가 이미 2천 원을 넘어선 만큼 경유도 조만간 2천 원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프타 수급이 다음 고비"
산업통상부 제공정부는 가격 상승 충격을 줄이기 위해 대체원유와 비축유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계약 기준 대체원유 확보 물량은 4월 5천만 배럴, 5월 6천만 배럴 수준이다. 예년 대비 각각 60%, 70% 수준이며, 도입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호주, 콩고, 가봉, 캐나다 등 17개국이다. 양 실장은 "5대양 6대주 거의 다 걸쳐서 지금 도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비축유 스왑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산업부는 4~5월분을 대상으로 3천만 배럴 이상 신청을 받았고, 이 가운데 2건은 계약이 끝나 실제 비축유 이송까지 완료됐다고 밝혔다. 이번 주 4건 이상이 추가 계약될 예정이며, 금주까지 계약 기준 스왑 물량은 총 800만 배럴 수준으로 전망된다. 이미 이송이 끝난 2건 물량은 약 280만 배럴이다. 양 실장은 "기업들이 관심도 많고 잘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나프타 수급을 다음 고비로 보고 있다. 양 실장은 "원유는 길게 계약해서 들여오는데 나프타는 5월 물량이 4월에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5월에도 물량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는 안정적으로 공급될 것 같다"면서도 "문제는 해외 물량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라고 덧붙였다. 정유사 가동률에 대해서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90% 정도 수준에서,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의료·반도체·자동차 핵심소재는 큰 차질 없어"
산업통상부 제공공급망 측면에서도 아직 핵심 산업 전반에 즉각적인 차질이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민우 산업부 산업정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수액제 포장재, 주사기류, 의료용 장갑 등은 평시 수준 재고를 보유하고 있고 원료도 안정적으로 공급 중"이라며 "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 관련 헬륨, 알루미늄휠, 황산니켈, 에틸렌가스도 현재 공급 차질 동향이 없다"고 말했다. 헬륨은 미국산으로 대체를 완료했고, 알루미늄휠은 말레이시아·인도·중국 등으로 대체 수입선을 확보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보건의료 품목도 현재까지는 방어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수액제 포장재는 6월 말까지 차질이 없도록 충분한 재고를 확보했고 대체 공급 방안도 추진 중이다. 관련 시제품 테스트는 지난달 30일 시작돼 2~3주가량 걸릴 것으로 산업부는 보고 있다.
주사기류와 주사기 침은 현재 공급에 문제가 없지만, 주사기 포장 원료 일부 부족 가능성이 제기돼 공급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일부 병원의 과도한 주문에 대해서는 복지부가 자제를 요청한 상태다. 의료용 장갑은 대부분 고무 기반 라텍스 제품으로 수급 애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어린이용 시럽 등 물약통은 재고를 파악하면서 원료 공급을 협의 중이다.
"포장재·페인트는 긴장 지속"
연합뉴스다만 포장재와 페인트는 상대적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품목으로 꼽혔다. 이 정책관은 "포장재 업체가 워낙 많아 업체별 재고 수준이 상당히 다르다"며 "부피가 큰 품목은 1~2주, 그렇지 않은 품목은 1~2개월 재고를 보유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식약처·중기부와 TF를 꾸려 우선순위 품목과 재고를 보고 있다"며 "라면 봉지와 분유 포장재를 우선순위가 높은 품목으로 보고 관리 중"이라고 했다. 페인트의 경우 평시 재고 수준은 유지 중이지만 원료인 용제 가격 상승과 상황 장기화 시 공급 감소 우려가 있어 화평법상 수입규제 특례 적용 등을 검토하고 있다. 종량제 봉투도 지역 업체와 지역 간 조정을 통해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관리 중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3차 최고가격제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양 실장은 "산업부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부처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문제"라며 "국민 부담, 수요 관리 신호, 화물차 운전자·농어업인 같은 생계형 소비자, 정부 재정 부담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