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의 성장 방정식…녹색대전환 K-GX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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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 경제는 반도체에 기대 버티고 있지만, 인구 감소와 에너지·기후 제약 속에서 기존 성장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전환 역시 산업 정책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 변화를 요구한다. CBS 노컷뉴스는 반도체·인구·에너지·기후변화·AI를 대한민국의 향방을 가를 5대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이번 기획은 정부의 경제성장전략을 다섯 축으로 점검하며, 개별 정책이 아닌 구조적 작동 방식을 묻는다. 현재의 성장 공식이 지속 가능한지, 그리고 한국 사회가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짚어본다.

[2026, 5大축④]기후변화가 촉발한 경제·사회 구조적 대전환
정부·기업·시민, '동등한 위기의식'이 전환 성패 가른다
K-GX로 생산·수요 녹색전환…상반기 중 전략 윤곽
전력·산업·건물·수송 전 부문 구조 전환 본격화
기업 지원 넘어 시민의 자발적 전환 이끌 인프라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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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韓경제 떠받치는 반도체…'도약' 위해선 대전환 필요하다
②출산율 수치에만 집착…인구 '정책' 아닌 '전략' 필요하다
③AI·반도체 경쟁의 병목은 '전력'…에너지 전환이 성패 가른다
④기후위기 '기회'로…녹색대전환K-GX, 진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계속)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앞세운 성장 전략은 이제 기술 경쟁을 넘어, 인구 감소와 전력·에너지 제약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마주하고 있다. 일할 사람과 소비할 사람이 함께 줄어드는 사회에서,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첨단 산업을 어떻게 떠받칠 것인가는 산업 정책만으로 풀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정부는 '포스트 반도체' 시대의 두 축으로 녹색대전환(K-GX·Green Transformation)과 인공지능대전환(K-AX·AI Transformation)을 제시했다. 에너지 사용 구조를 전기 중심으로 바꾸고, 화석연료를 무탄소 전원으로 전환하는 '에너지 전환'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겠다는 구상이다.

녹색대전환은 발전원 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동 방식과 주거, 소비와 생산까지 사회 전반의 '삶의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과제에 가깝다. 이 전환이 위기의 비용이 될지,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지는 결국 정부·기업·시민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상이 된 기후변화, 위기인가 전환의 출발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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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기상청에 따르면 2024년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6도로, 1973년 기상 관측망이 전국으로 확대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전 최고 기록이었던 2018년의 25.3도를 6년 만에 넘어선 수치다. 그 이전 최고치는 2013년 25.2도였다. 다만 이 기록은 1년 만에 다시 바뀌었다. 지난해 여름 전국 평균기온은 25.7도를 기록하며 새로운 최고치를 썼다.

세계기상특성(World Weather Attribution)은 지난해 한국의 영남 지역을 덮친 산불이 '약 3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매우 드문 기상 조건'에서 발생했다며,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발생 가능성이 크게 낮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3월 22일 경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일주일 만인 같은 달 28일 오후에야 진화됐다.

기후 이상은 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4년 가을 이례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배추 소매가격이 1년 전보다 60.9% 오르기도 했다. 오징어는 1마리 가격이 1만 원에 육박하는 이른바 '금(金)징어'가 됐고, 고등어와 갈치 등 '국민 생선'의 가격도 함께 껑충 뛰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 와인, 스페인 올리브, 일본 참치처럼 각 나라를 상징하는 먹거리가 현지에서 점점 귀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란은 100년 만의 최악 가뭄을 겪은 반면, 동남아시아는 기록적 폭우와 홍수로 천 명 넘게 사망했다. 세계 곳곳에서 'n년 만의' 기상 재앙이 이어지면서, 기후변화는 남극 빙하 면적이나 북극곰 개체수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일상에서 체감되는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2035 NDC 확정…온실가스 61% 감축의 약속

이미 변해버린 기후 앞에서 각국은 '적응'(adaptation)과 '완화'(mitigation) 대책을 동시에 펴고 있다. 아열대화 시기를 전망해 아열대 작물을 시험 재배하는 등 먹거리 체계를 대비하는 한편, 지구 온도 상승 속도를 늦추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도 힘을 싣는 식이다.  

지난해 가을 두 달여 간의 논의 끝에 확정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도 이런 완화 노력의 일환이다. 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총배출량에서 흡수량을 뺀 값)은 2018년 7억 4230만tCO₂eq(이산화탄소환산톤)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감축 속도를 높여 2035년에는 정점 대비 53~61%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2035년 순배출량 목표는 3억 4890만~2억8950만t으로 설정됐다.

부문별로는 전력 부문에서 화석연료를 무탄소전원으로 전환해 탄소 배출을 68.8~75.3% 줄이고, 수송 부문은 석유·가스차에서 전기·수소차로 전환해 60.2~62.8% 감축한다. 건물 부문은 냉난방 등 에너지 소비체계를 바꿔 53.6~56.2%를 줄이고, 산업 부문 역시 설비·공정 전환을 시작해 24.3~31% 감축을 추진한다. 이밖에 냉매 7.6~9.5% 폐기물 8.3~8.5%, 농축수산 5.6~6.1% 등 분야에서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원을 늘리는 전략도 있다.

전력·산업·수송·건물까지…사회 전반의 구조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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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적응과 완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주무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10월 1일 출범했다. 기후부는 2035 NDC가 국무회의에서 최종 심의·의결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형 녹색전환(K-GX) 추진전략 구상을 공개했다. NDC 달성을 위한 10년간의 부문별 세부 추진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기후부는 녹색산업 전환을 통해 산업·경제 구조를 혁신하고, 신산업을 육성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K-GX 정책비전을 제시했다. 녹색전환과 AI전환을 양대 축으로 탄소집약적인 산업 구조를 바꾸고, 성공모델을 만들어 제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전력 부문에선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시스템 설계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기존 태양광과 육상풍력은 환경 훼손 우려 등으로 확대에 한계가 있었던 만큼, 지붕형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 먼바다 해상풍력으로 보급 경로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전력 생산과 송·배전망, 변전·환소 설치 과정이 주민의 일방적 부담으로 남지 않도록 '햇빛소득마을' 조성 등 이익 공유 모델을 제시하고, 복잡한 시장 제도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건물 부문에선 석유·가스 대신 공기와 물 등 주변 열을 활용하는 히트펌프 보급을 늘린다. 공공건축물부터 탄소 배출을 줄이는 그린리모델링을 의무화하고, 민간의 변화를 유도한다. 수송 부문은 친환경차 보급 확대가 관건이다. 2030년 신차의 50% 이상을 전기·수소차가 차지하도록 지원하고,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최대 100만 원의 전환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산업 부문은 제조업 생산·설비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해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 최다 배출 업종인 철강업은 철광석과 석탄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핵심 공정(고로)을 전기로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연료는 수소가 함유된 천연가스로, 원료는 철광석 대신 수소환원 과정을 거친 고온성형철(Hot Briquetted Iron)로 바꾸는 방식이다.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의 고로 11기를 전기로로 전환하는 데만 최소 11조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석유화학 업종도 주원료인 나프타(naphtha)를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열분해유 등으로 대체하고, 연료는 중유·석탄 대신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시멘트 업종은 석회석(CaCO₃) 사용 비율을 줄이고 혼합물 비중을 높이는 한편, 제조공정의 열원으로 쓰는 유연탄을 폐합성수지 등 순환자원으로 대체하는 전환이 추진된다.

기업 입장에선 막대한 비용 부담과 수출 경쟁력 유지라는 과제가 함께 따라오는 만큼, 정부 차원의 보조·융자와 연구개발(R&D) 지원이 병행될 전망이다. 재정투자와 세제 혜택, 기후·녹색금융 확대, 전환금융 도입도 예고돼 있다.

K-GX 전략 세부 내용 상반기 확정…부총리가 진두지휘

K-GX 전략의 구체안은 올해 상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정부는 이달 중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민관합동 K-GX 추진단'을 출범하고, 관계 부처 합동 범정부 협의체와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한 민간 협의체를 운영해 정책과제를 발굴하고 법·제도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업종인 '중후장대' 장치산업은 공정 전환과 설비 교체에 드는 비용이 큰 반면, 한 번 투자가 이뤄지면 장기간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전환 투자가 탄소무역장벽에 대비하고 녹색시장을 선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 부총리는 지난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K-GX 추진단 운영 계획을 보고하며 "녹색대전환을 위기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K-GX 전략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2035 NDC 목표 달성을 넘어, 발전·산업·수송·건물 등 국가·사회 전 부문에서 녹색 대전환을 이뤄가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K-GX 세부 전략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정부·기업·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위기는 사회위기"…격차 해소와 저탄소 인프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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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이준이 교수는 "기후변화 대응을 흔히 온실가스 감축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을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과학기술과 산업 정책뿐 아니라 수요자 측면의 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 1인당 배출량이 연간 13톤(OECD, 2020년 기준)으로 굉장히 많다. 수요자 측면에서의 배출 저감이 있지 않고서는 기술적으로만 해결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중과 일반인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단순히 어떤 개인의 선택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고 개인이 정말 삶의 전반에서 저탄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인 인프라가 갖춰져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지난해 녹색전환연구소가 자체 집계한 한국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인당 평균 9.46t이었는데, 이 중 주거가 3t으로 가장 높고, 소비와 교통이 각각 1.9t, 먹거리 1.47t 순이었다. 연구소는 항공기 이용 시간과 주거 면적, 내연기관차 이용, 여행과 외식 빈도, 의류 구매량 등이 주요 배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바꾸기 어려운 요인도 적지 않다.

이 교수는 "기후위기는 결국 사회위기"라며 "사회위기가 극복되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사회·경제 시스템이 구조적 변화를 겪는 만큼, 이를 그간의 사회문제를 완화하고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정부의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맞물린 미래 과제들…함께 설계하는 전환이 관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제도와 시장 환경을 정비하는 데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이스트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엄지용 원장은 "기후 대응과 탄소 저감이 규제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이어지려면 시장 기반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 원장은 "전력 생산과 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전기요금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점은 대표적인 시장 실패 사례"라며 "이런 구조에서는 전력산업 혁신이 어렵고 새로운 기술·사업 모델이 등장할 여지도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요금을 일괄적으로 누르기보다, 에너지 취약계층을 별도로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글로벌 시장의 흐름은 녹색전환과 AI전환으로 향하고 있는데, 정부가 GX 분야를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가 탑다운 방식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어떤 기술이 사업성과 확장성을 갖는지 시장에서 검증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인허가 절차 완화와 공적 금융 기능 강화 등 정부의 역할을 언급하며,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성과가 보상받고 기술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AI 산업 육성과 반도체 경쟁력 강화는 데이터센터 확충과 직결되고, 이는 재생에너지 기반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도체와 인구 문제, 에너지 전환과 녹색전환, AI 전략은 서로 맞물려 있는 만큼, 이를 일관된 방향으로 연결하는 정책 설계가 국가 경쟁력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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