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6월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유아교육·보육통합 실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남북통일보다 유보통합이 어렵다" 지난해 6월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이 공식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도, 2023년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똑같은 농담을 던졌다.
30년간 풀지 못한 '유보통합'이란 숙제가 대물림되어 자조섞인 농담이 됐다.
'밥상 격차'가 더 이어지지 않도록

유보통합은
'모든 영유아가 유치원·어린이집 관계없이 질 높은 교육·돌봄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정책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30년간 유보통합에 실패하며 교육격차를 줄여내지 못했다.
뿌리부터 갈라진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차이 때문이다.
그동안
유치원은 '교육', 어린이집은 '보육'을 전담한다는 이분법이 있었다. 유치원은 3-5세를 대상으로 하는 '학교 교육'을 목적으로 출발했다.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이며, 유치원 업무는 교육부가 담당했다. 반면 어린이집은 0-5세를 대상으로 하는 '보육 서비스'가 목적이었다.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른 복지시설이며, 정책 주도권은 보건복지부가 쥐었다.
교육과 돌봄으로 갈라진 두 기관의 목적은
'불평등한 결과'로 나타났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부모가 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시간·설립 기준·시설 기준·지원금 등이 모두 다르다. 책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6>에서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교사 자격, 시설 기준, 평가 제도, 재정 지원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차이 났다"며 "부모들은 기관에 따라 교사 학력이 다르고, 수업 질과 프로그램 구성이 달라 불만이 컸다"고 밝혔을 정도다.
교육 현장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고 견고해지는 교육격차를 우려하고 있다. 임미령 유보통합 범국민연대 대표는 "유치원은 한끼당 급식비 3500원을 교육청에서 전액 별도 지급받는데, 어린이집은 보육료 안에 2500원 급식비가 포함돼 있다"며 "지원금 차이에서부터 시작한 '밥상 격차'가 아이 발달 격차로 확대된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기관별로 교사 한 사람이 맡는 아이 수인
'교사 대 아동비율'이 다르다. 아동비율이 너무 많으면 아이들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해 아동 학대 혹은 학대 방임이라고 교사들이 누명을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교육 격차에 따라 학부모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서열이 형성됐다. 정부 지원금이 가장 넉넉한 국공립 유치원을 필두로, 줄세우기 맨끝에 가정 어린이집이 있었다. 한 유치원 원장은 "빵빵한 정부 지원을 받는 국공립 유치원에 들어가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기회를 얻어
'로또 맞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그동안 암암리에 계층을 나누는 분위기였다"고 토로했다.
특히 임재택 부산대 명예교수는 "수도권과 지역 등 재정 여력과 시설이 차이 나는 기관·지역별로 교육 질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최근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시험인
'4세 고시'까지 등장하면서 지금이 공교육을 강화해 격차를 줄여야 할 '마지노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대헌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 고문은 "이렇게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손을 쓰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로든 유치원과 어린이집 모두 무너질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또한 김명하 교수는 "유보통합이 자칫 늦어지거나 무산될 경우, 제2의 보육대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며 "정책을 밀도 있게 추진하고, 관련 정책 입법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유보통합 관련 2026년 교육부 예산을 많이 증액해 실질적인 현장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교사 대 영유아 비율 개선', '무상 교·보육', '틈새 돌봄' 등 현장 요구 정책을 먼저 추진하겠다"며 "지난 정부와 달리 정책 공급자가 아닌 정책 수요자 측면에서 '교사 수급 여력' 등을 적극 분석해 현장에 안착하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추가 과제를 단계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라고 지금까지의 유보통합 진척상황을 설명했다.
'아이중심 유보통합'으로
지난 13일 전주 건지산 임금님숲에서 숲 활동을 하고 있는 전주 초록빛 유치원 원아들. 강석찬 기자전문가들은 유보통합 정책의 중심엔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교육 현장에서도 그 방향성엔 이견이 없다. 임재택 부산대 명예교수는 "이익을 앞세운 교사, 우리 아이 중심인 학부모, 표를 계산하는 정치인 모두 유보통합 정책의 주인공이 아니다.
오로지 아이가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 임미령 대표는 "그동안 유보통합을 늦추고 교육 질 격차를 공고히 하는 각자의 이익 논리를 배제하고, 아이 권리를 옹호·대변하는 진짜 교사 역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교육과 보육의 이분법을 해소하는 유보통합 해법 중 하나로 '숲 유치원'이 제시된다. 지난 7월 '유보통합 질적 전환과 새로운 상상 토론회'에서 육아정책연구소 박창현 연구위원은 숲유치원을 '유보통합 선도사례'로 꼽았다.
지난 13일 전주 건지산 임금님숲에서 숲 활동을 하고 있는 전주 초록빛 유치원 원아들. 강석찬 기자지난 13일 기자가 방문한 숲유치원(전주 초록빛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의 건강한 놀이에 중점을 둔 '숲 체험 교육'이 진행됐다. 인위적인 수업 교구를 활용해 일률적으로 학습하는 수동적인 학습이 아니라 자연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직접 만져보고 비교해보면서, 모양과 길이 감각 등을 개별적으로 익히고 의사소통 및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능동적인 자율 수업 방식이었다.
강신영 한국숲유치원협회 협회장·전주 초록빛 유치원 원장은 "
인생 출발선상에서부터 암암리에 존재했던 교육의 질적 차별을 극복하고, 아이가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는 숲 활동을 핵심으로 한 커리큘럼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숲유치원협회에는 전국 1200개가 넘는 유치원·어린이집이 구분없이 소속돼 있다.
숲유치원처럼 어른들의 이해관계를 떠나 아이 중심으로 유보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그동안 행정·재정에 치중한 관점을 뛰어넘어 질 높은 교육·돌봄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줄 수 있는지 바로 여기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