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었죠. 주식 투자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렇게 속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A씨는 지난 2020년 지인을 통해 '실력가'라는 한 남성을 소개받았다. 자신을 증권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한 B(40대·남)씨와는 그날 이후 가까워졌다. B씨는 주식 투자를 권유했다. 차용금 형태로 투자금을 주면 연 6% 이자를 지급하고, 원금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주식 투자에 문외한이었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지인 말을 믿고 그에게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A씨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B씨에게 20여 차례에 걸쳐 34억 원 상당을 건넸다. 비상장 주식 2개 종목에만 각각 10억 원씩 투자했고, 나머지는 상장 주식에 투자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B씨는 "수익이 계속 나고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라 곧 상장될 거다"라며 A씨를 수시로 안심시켰고, 이자 등도 정기적으로 지급했다. 증권회사 계좌 잔고 현황을 보여주며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2023년 말, 자금이 필요했던 A씨가 투자금 정리를 요구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B씨는 원금 지급을 수개월 동안 미뤘다. 이를 수상히 여긴 A씨가 직접 확인해 보니, 보유하고 있다던 주식은 대부분 처분했거나 일부 종목은 아예 매수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A씨는 "문제 없이 투자를 정리해줄 것처럼 안심시키는 동안에도 해당 주식들은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지급된 이자도 실제 수익이 아니라 안심시키기 위한 눈속임이었던 것 같다"며 "보여줬던 서류들도 다 가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피해를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데 법도 너무 어렵다. B씨는 계속 거짓으로 일관하며 뉘우치는 기색 없이 잘 살고 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B씨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지난 16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B씨가 A씨에게 16억 원을 지급하고, 다 갚을 때까지 연 20%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B씨가 잔고현황 등을 임의로 작성해 제공했고, 실제로는 약속한 주식을 취득하지 않거나 이미 처분해 정산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수개월간 투자금 반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것은 약정 불이행이자 불법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라고 판시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 김혜민 기자 하지만 민사소송 판결에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투자 행위가 실제로 이뤄졌고, B씨가 투자금 일부인 20억 원 상당을 반환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불송치 결정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이의를 제기했다.
B씨에게 투자사기를 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투자자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경찰에 관련 고소장이 접수된 사건은 6건이며, 이 가운데 2건은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1인당 피해를 호소하는 금액은 적게는 5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해운대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불송치한 A씨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보완 수사를 지시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당시에는 사기 혐의의 고의가 입증되지 않아 불송치했다"라고 해명했다.
B씨는 받은 투자금으로 실제 주식에 투자했으며, 사기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B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투자금을 받았다"며 "주식 상장을 목표로 제대로 된 투자를 하고 있다. 실제로 주식을 매수해 수익금을 지급해온 만큼 사기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현재 B씨는 증권사에 재직하고 있지 않으며, 개인 투자회사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