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3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관련해 극적인 합의로 한국 경제가 큰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정부는 통화스와프 없이 연간 최대 200억달러를 조달해야하는 숙제를 안았다.
30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해 세부 사항에 전날 합의했다. 현금 투자 2천억달러(약 284조6천억원)와 '마스가 프로젝트'로 명명된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약 213조4500억원)가 큰 갈래다.
현금투자액은 총 2천억 달러,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합의했는데 이는 우리 측이 그동안 제시한 최대치다.
문제는 이같은 액수가 우리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느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정부에 지난 8월초 외환시장에서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는 (연간) 150억~200억달러라고 의견을 줬다. 굉장히 잘된 협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간 200억달러 상한이 우리 외환시장이 수용 가능한 액수라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도 "연간 200억달러는 우리 외환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상한선"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외환자산의 운용수익으로 연간 200억달러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통화스와프 없는 연 최대 200억달러 조달에 대해 "기본적으로 우리 외화자산의 운용수익, 이자나 배당 수익이 상당히 많아 그쪽에 기대어 활용할 생각"이라며 "우리 (외환) 시장에서 바로 조달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 실장은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경우 납입 시기와 금액의 조정을 요청할 별도 근거도 마련했다"며 "투자 약정은 2029년 1월까지이지만 실제 조달은 장기간 이뤄져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더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220억달러(약 601조원) 규모로, 이 중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금(47억9천만달러)을 제외한 국채·회사채 등 유가증권은 3784억2천만달러다.
유가증권에서 연간 5.3% 수익을 낼 경우 200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운용 수익이 모자라는 상황이 발생하면 국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국제 금융시장 등에서 정부보증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국내 외환시장에 신규로 충격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 타결과 관련해 가장 큰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고, 현금 투자액이 우리가 제시한 수준에서 정해졌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올해 경제성장률에는 크게 영향은 없겠지만 내년 성장률은 조정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며 "내년에는 무역 불확실성이 다소 사라져 성장률 상향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장용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는 "일단 우리 요구가 관철됐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관세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경쟁국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다면 최소 방어를 했다고 볼 수 있다.굉장히 성공한 협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연간 최대 200억달러 조달로 만에 하나 외환 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당국의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민간연구기관 관계자는 "적지 않은 돈이 매년 빠져나가게 되면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국내 설비에 들어갈 돈이 매년 빠져나가게 되면 흑자를 보여왔던 설비투자 부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정부 당국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