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국인만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민족도 드물다.
구한말 하와이와 중남미 이주 노동 이민부터 시작해 일제시대 일본과 만주 및 연해주 이주, 그리고 소련 당국의 정책에 따른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197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 본토 이민, 1980년대 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동남아시아와 유럽 이민까지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에 빗댄 '코리아 디아스포라'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 통계에 따른 재외동포는 7백만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250만명이다.
긴 이주 역사와 작지 않은 이주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해외 한국인을 표적으로 한 범죄는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이 국제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과 국제적 위상 제고에 따라 '몸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메콩강 일대 국가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에게 경계령이 내려졌다.
이 일대에는 중국계 조직이 '범죄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국제 NGO인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올해 5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계 범죄 조직은 메콩 3국 GDP 총액의 40%가 넘는 범죄 수익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이들 중국계 범죄 조직은 피해자를 납치해 가족들로부터 몸값을 받아내거나 강제 구금한 뒤 보이스 피싱, 로맨스 스캠. 주식 리딩방 사기, 온라인 도박 등에 동원해 다른 한국인 피해자를 물어오도록 한다. 피해자가 범죄 동참을 거부하면 구타와 고문은 물론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 내에서 활동하던 중국계 범죄 조직들은 2000년대 들어서 중국 당국이 카지노와 도박 단속을 강화하자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 등으로 본거지를 옮겨 중국인들을 상대로 범죄를 벌여왔다.
연합뉴스코로나 19가 이들에게는 '산업 번창'의 기회였다.
손님이 끊긴 현지 카지노와 리조트, 부동산 등을 싸게 사들여 범죄 단지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던만큼 온라인 사기 기회도 많아졌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국민 소득이 높고 디지털 금융 시스템도 발전한 한국은 그들의 온라인 사기에 좋은 먹잇감이었다.
한국 내 청년 실업 증가도 범죄에 유리한 환경이 됐다. 한달에 수천만원을 내건 '고수익 알바'나 '동남아 취업' 제안은 많은 한국 청년들을 유혹했다.
유혹에 이끌린 한국 청년 가운데는 어렴풋이나마 올바른 일은 아닐 것임을 느끼고도 가담하거나 애초에는 피해자였다가 고수익에 이끌려 자기 발로 다시 범죄 조직을 찾아오는 부류도 있다는게 현지 교민들의 얘기다.
피해자가 범죄 중간책으로 변신하는 범죄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한국인이 이처럼 위험해지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에 둔감했다.
재외국민 보호의 최일선에 있는 현지 대사관은 영사 업무를 귀찮은 민원쯤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지난해 캄보디아 중국인 범죄조직에 감금됐다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한국 정년이 현지 대사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금요일 퇴근 시간이라서 당장 도와줄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만 들었다는 증언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는 4강에 치중됐던 외교 자원을 자국민 보호에 걸맞게 재편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4천억이 넘는 캄보디아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예산도 캄보디아 당국의 협조 정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우리 국민 보호에 협조하지 않는 남의 나라 국민을 위해 우리 국민 세금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 감금된 한국인들의 구출과 송환에 캄보디아 정부가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송환된 한국인 가운데 범죄에 적극 가담한 사람을 가려내 합당한 처벌을 해서 한국인 상대 국제 범죄의 생태계가 확산되는 것도 차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