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국토 약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가 몰려산다. 사진은 서울 중구 서울역 지하철 1호선 승강장이 혼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류영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지방소멸 위기,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멈추지 않는 '인구 블랙홀' ②"지방엔 아무것도 없다", "서울공화국이 문제다"…어디까지 사실? ③'교도소'라도 유치해야 할 판…'지방 일자리' 위기, 청년이 없다 ④"지자체 절반 소멸" 한국도 日 따라가나…해답은 '지방'에 있다 ⑤'한강의 기적' 양날의 칼로 돌아왔다…'K-지방소멸' 문제점은? (계속) |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 밀집된 공간에서 경제적 효율이 발생한다. 이러한 효과는 도시화를 더욱 촉진한다.
도시화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50년이면 세계 인구 55%가 대도시권에 살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같은 도시화 현상을 두고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도시화가 50% 이상 진행된 국가들의 소득은 5배 높고, 영아사망률은 3분의 1 수준"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글레이저 교수는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살게 되면 운전을 많이 하고 각자 큰 집을 원하겠지만, 도시에서는 높은 땅값이 개인의 공간을 제한하고 자동차 운행 거리가 짧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수록 친환경적이라고도 주장한다.
한국은 2020년 기준 OECD 소속 26개국 가운데 수도권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다. 한쪽 측면에서 본다면 도시화의 이점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현상이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글레이저 교수가 말하는 일정한 '균형' 속에 나타나는 도시화와 달리
한국은 '너무 빠른 속도'로 '수도권'만 팽창하는 구조여서 혜택보다 폐해가 먼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속도'와 '편중', 'K-지방소멸' 무엇이 다른가
강원특별자치도 내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된 홍천군의 평일 한낮 모습. 홍천=최보금 기자OECD는 지난 5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도시 중심지의 인구 증가 속도는 다른 OECD 국가들과 유사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대해선
"서울 대도시권에 전체 인구와 GDP의 절반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집중(the very high concentration)되는 특수한 과제에 직면했다"고 덧붙였다.
인구가 도시로 향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인구와 자원이 지나치게 한 곳으로만 몰리는 점이 특이하다는 의미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농어촌 마을이 사라지거나 전통적인 산업 도시들이 쇠퇴해서 발생하는 등 '지방소멸'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간적인 불평등 구조, 예컨대 일자리 양극화 등을 초래하는 지방소멸이 빠른속도로 벌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 2000년 0곳이었던 국내 소멸위험지역이 2024년 3월 기준 130곳으로 늘어났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제공특히 지방 인구 '감소' 속도는 이례적이다.
지난 2016년 국내에서 '지방소멸위험지수'(이하 소멸위험지수)를 개발한 이상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지방소멸 속도는 너무너무 빠르다"며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할 때만해도 '언어적 과잉'이라는 비판적 시선이 많았는데,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고유명사처럼 굳어져 버린 것만 보더라도 현실을 일정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대비 출산 가능한 여성 인구(20~39세) 비율을 기준으로 산출한다. 젊은 여성 인구가 고령 인구보다 적을수록 소멸위험이 높다는 뜻으로, 0.5 이하가 소멸위험구간이다.
문제는
2000년에는 단 한곳도 없던 소멸위험지역이 2024년 기준 130곳에 이른다. 같은해 소멸고위험지역(지수 0.2미만)도 57곳으로 늘어났다.
불과 24년 만에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82%에 '소멸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지방소멸지수 한계 보완한 'K-지수'…"그래도 빨라"
강원특별자치도 내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된 홍천군은 대부분이 노인 보호구역이다. 홍천=최보금 기자다만, '소멸위험지수'의 한계점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특히
젊은 여성 인구 수만으로 소멸 가능성을 단정하면, 인과관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이 2022년 발간한 '지방소멸 세대의 인구감소 위기 극복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소멸지수가 전국 최저 지역으로 분류된 경북 의성군의 합계출산율은 1.60으로 전국 10위, 전북 진안군도 전국 5위권에 들었다.
이 보고서는 "인구 재생산력을 중시하는 지방소멸지수는 하나의 결과지표에 불과하며, (지방소멸이) 사회적 요인인 인구이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젊은 여성이 줄어서 지역이 사라졌다는 식의 해석이
'일자리나 삶의 조건이 나빠져 사람들이 떠났기 때문'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이후 한창 사람이 붐빌 시간대지만, 홍천군 시내에 위치한 한 카페 내부가 텅 비어있다. 홍천=최보금 기자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산업연구원은 '한국형 지방소멸지수(K-소멸지수)'를 개발해 제안했다. 기존 지수가 인구 재생산력에 집중했다면,
K-소멸지수는 지역 내 고부가가치 기업 비중, 고용과 소득 수준 등 실물경제의 순환 구조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러나 이 지수를 적용하더라도
2022년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우려지역이 50곳, 소멸위험지역은 9곳으로 총 59곳(25.8%)이 해당했다. 수치상 범위는 줄었지만, 여전히 열 곳 중 네 곳 가까이가 '소멸 경고'를 받고 있는 셈이다.
산업연구원 조현승 연구위원은
"K-소멸지수를 적용해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 현상과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빨랐나…"한국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과 집중' 전략"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하늘이 푸르게 보이고 있다. 류영주 기자OECD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도시화와 농촌 소멸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지방소멸은
단순히 인구 감소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의 선택이 현재의 K-지방소멸을 야기한 구조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임형백 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는
"1972년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성장거점(growth center) 전략을 선택했고, 1990년대 초 1기 수도권 신도시, 2000년대 초반 2기 수도권 신도시를 개발한데 이어 지금도 수도권에 주택공급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고학력의 미혼자가 수도권으로 이주하기 때문에 이들의 수도권 이주를 방지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며 "그런데 그러지는 못하고 이들이 수도권으로 이주하고 (정부는) 이들에게 거주할 아파트를 공급하게 되니 지방소멸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당시 정부의 성장거점 전략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당시 우리 정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한 것"이라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시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초 의도와는 달리 발전 성과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전파되는 파급효과를 가져오기보다는 서울 등 거점으로 더욱 집중되는 '빨대 효과'가 더욱 강해졌다"며 "이렇게 큰 구조가 만들어진 다음에는 경로의존성이 작동해 지금까지 수도권 집중 현상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K-지방소멸, '맞춤 전략 필요'
평일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교통량이 적어 교통 신호등이 노란 점멸등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시내 모습. 홍천=최보금 기자이처럼 정부 정책이 수도권으로의 '급속 쏠림'의 배경이 된 만큼,
단순히 '모든 지역을 살리자'는 식의 균등한 지원 대책은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전문가들은 2022년부터 시행 중인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언급했다. 이 기금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89개 지자체에 5년간 매년 1조 원 규모의 사업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이렇게 개별 지자체에 풀어봐야 실질적으로 효과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광역 경제권 수준에서 전략 산업을 정하고, 앵커 기업과 거점 대학을 유치해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이 기금처럼)
'지역이 알아서 계획을 세우면 재정을 줄게' 식이라면 결국 출혈 경쟁만 유도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조현승 연구위원은
"지방을 모두 균등하게 살리는 방식은 '마이너스섬' 게임 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적으로는
몇 개의 거점 도시에 선택과 집중하는 전략이 재정과 행정, 환경 측면에서 모두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제승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모든 지역이 다 살아야 한다는 접근보다는 인프라와 경쟁력이 있는 광역시와 도심 융합 특구를 기반으로 지방에 산업 거점을 육성하고, 나머지 군 단위 지역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생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