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말년 병장'들의 무모한 대미외교…동작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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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 체제, 조기 대선 앞두고 '대미 행보' 자제해야
트럼프식 협상 전략 말려들면, 한국 경제·안보 이익 훼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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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역을 앞두고 말조심, 몸조심하는 게 좋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수십만 예비역 병장들이 몸소 실천해 온 비공식 복무신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관가에는 6월 3일, 일제히 '전역'을 앞둔 약 130여명의 '말년 병장들'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장차관급 정무직 공무원들이다. 지휘관의 위헌 계엄내란 행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다. 만기 제대가 아닌 '불명예 조기전역 대기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낙엽을 피하기는커녕, 떨어지는 낙엽을 주워 모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중심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있다. 그렇게 주워 모은 낙엽들로 미국의 트럼프와 거래를 시도하려는 모습이다. 자칭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그 속내를 모를 리 없다.
 
권한대행이던 한 전 총리와 트럼프는 지난달 8일 첫 전화 통화에서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기꺼이 긁어줬다. 한 전 총리는 트럼프에게 "조선, LNG 및 무역균형 등 3대 분야에서 미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양측이 상호 윈-윈 (win-win)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무역균형을 포함한 경제협력 분야에서 장관급에서 건설적인 협의를 계속해 나가자"고 했다.

이는 한국이 조선업 협력과 미국산 LNG 구매 등에서 협조할 테니, 상호관세 25%를 재고하는 방향으로 협상하자고 한 것이다.
 
트럼프도 통화 도중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이냐?"라고 묻는 립서비스를 건넸다. 당사자와 배석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런 대화는 "관련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의 전언으로 다음날 신문에 공개되었다. 이 소식통은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수준에서 짧게 문답이 오갔다"고 부연했지만, 한 권한대행 측의 '각본'에 '매끄럽게' 응해주면서 장사꾼 트럼프 역시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를 한 셈이다.

트럼프는 이날 공화당 행사에서 "다른 나라들이 우리에게 전화를 해오면서 내 엉덩이에 입을 맞추면서(kissing my a**) 관세 협상을 하자고 한다"고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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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트럼프는 '미국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한국 등 57개국을 향해 상호관세 카드를 야심차게 꺼내들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상대국들보다 금융시장이었다. 주식, 외환, 채권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고,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경고음도 나왔다. 게다가 가장 크게 겁 먹길 바랐던 중국의 시진핑은 예상 외로 덤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체면을 구긴 트럼프는 결국 90일간 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한국·일본·영국·인도·호주 등 5개국과 우선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비교적 관계가 원만한 동맹 우방국과 먼저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의 효용성을 증명하고 다른 국가들도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한국의 현 대행 정부는 트럼프의 이러한 전략에 기꺼이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2+2 고위급 통상 협의를 시작한 맥락이다.
 
한 전 총리의 권한대행 정부는 대미 협상에서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워싱턴에선 다른 이야기가 전해졌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국 등 아시아국과의 무역 협상과 관련해 "그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거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정부는 선거 전에 미국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선거 전 무역 협상의 기본 틀(framework)을 마련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이 무역협상을 조기 대선에 활용하고자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베선트 장관이 한국만 콕 집어 말한 것은 아니었다. 기자가 '한국의 조기 대선, 일본의 참의원 선거 등 아시아 국가들의 주요 정치 일정 탓에 협상 타결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답한 것이었다. 또한 이 발언이 트럼프의 취임 100일 경제 성과를 설명하는 브리핑 자리에서 나온 것을 고려하면 '미국 국내용' 메시지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지난달 24일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 회의실에서 안덕근(왼쪽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가 한미 '2+2 통상 협의'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산업부 제공지난달 24일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 회의실에서 안덕근(왼쪽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가 한미 '2+2 통상 협의'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산업부 제공
그렇다 치자. 그러나 문제는 '한덕수' 본인이다. 대선 출마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외신과의 연이은 인터뷰에서 '통상 전문가'를 자처하며 한미협상에 '진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 발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협상 전략도 불안하다.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지난 20일 공개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관세 조치에 "맞서지 않겠다(will not fight back)"고 몸을 낮췄다. 나아가 "우리의 산업 역량, 금융 발전, 문화, 성장, 부는 미국의 도움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은 우리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그래서 한국은 더 내야 한다"는 게 트럼프의 다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더 내겠다는 것인가? 이어 28일 공개된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거래"라면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 의사를 선제적으로 시사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전망도 불투명해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30일짜리 대행'이 덥석 테이블에 올려놓아선 안 되는 카드였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라인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행보도 '말년'답지 않다. 그는 지난 25일 백악관을 방문해 알렉스 웡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회담을 가졌다. 국가안보실에 따르면 두 사람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량이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양측 국가안보실(NSC)이 방위산업 및 조선업 협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범정부 차원의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더욱 큰 시너지'라는 표현은 가볍지 않다. 양국 군이 더 큰 시너지를 내려면, 지위와 역할, 협력 범위 등에 변화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는 불법 계엄으로 탄핵된 대통령의 참모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미국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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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바보가 아니다. 그는 1기 집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을 지켜본 인물이다. 한국 정치의 다이나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미 경험했다. 전임 정부의 대외 정책과 결정이-특히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었던 사인일수록-다음 정부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트럼프 자신도 전임 바이든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타결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을 뒤집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왜 시한부 한국 정부를 상대하는 척하고 있을까?

그 해답을 트럼프의 책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그의 11가지 협상 원칙 중 다섯 번째 원칙은 이렇다. "지렛대를 사용하라".

트럼프에게 있어 불투명한 한국의 정치 상황,그리고 사면초가 속에서 일장춘몽 중인 한국 정치인들은 더없이 좋은 지렛대다. 그는 그 지렛대를 자신의 이익에 따라 당겼다 놓았다 하고 있다. 그 지렛대에 한국의 미래를 올려놓고 싶지 않다면, 지금 '말년 병장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다.
 
동작 그만!

박형주 칼럼니스트박형주 칼럼니스트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미국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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