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수습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무안(전남)=황진환 기자국토교통부가 제주항공 참사를 계기로 전문가 위원회를 꾸려 약 석 달간 준비한 항공안전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간 제기돼온 별도 항공안전청 설립이나 현재 국토부 소속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외청 분리 등 근본 대안은 빠져 '맹탕'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기존 '공항'개선책 더해 '항공사' 안전운항·당국 '감독역량' 강화
주종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왼쪽)이 지난 1월 2일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국토교통부 제공30일 국토부는 지난 2월 4일 산학연 전문가 중심의 자문기구로 출범한 '항공안전 혁신위원회(위원장 포함 총 23명)'와 그간 논의해 마련한 '항공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항공운항 안전 분과와 공항시설 개선 분과로 이뤄진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은 △기존 공항시설 개선(방위각시설 및 조류충돌예방 강화 등)에 더해 △항공사 안전성 강화 및 △당국의 감독 역량 강화가 추가된 형태다.
우선 국적 항공사의 정비의무를 강화해 비행 전·후 및 중간 점검 등 정비시간을 늘리고 정비 인력을 확충한다. 최소 정비인력 산출기준 상 경력기준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올려 고(高)경력 정비인력 확충을 유도한다.
국제선 운수권 배분 시 사망 사고를 일으킨 항공사는 1년간 배분 대상에서 배제하는 페널티를 부과하고, 반대의 경우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항공사의 안전투자 확대를 유도한다. 신규 노선 허가나 정기사업계획 허가 시 시행하는 안전성 검토도 현재보다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제주항공 등 일부 LCC(저비용항공사)의 높은 가동률 문제는 간접적으로 개선한다. 국토부 주종완 항공정책실장은 "가동률 직접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찾기가 어렵다"며 "대신 가동률 높은 항공사는 안전점검을 강화하거나, 결항지연이 많은 항공사는 실제 정비현장을 검증해보는 방식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항공사별 항공기 가동률을 직접 규제하는 대신, 매월 모니터링해 가동률 최상위 3개 항공사 대상 특별안전점검을 오는 7월부터 실시해 적정 가동률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안전감독 역량도 강화한다. 우선 정부가 인력·장비·시설 등 안전운항체계 확보 여부를 검사해 부여하는 '운항증명(Air Operator Certificate, AOC)'제도를 현행 '재심사'에서 '재평가'로 개편해 감독 기능을 강화한다.
주 실장은 항공운항증명 재평가에 대해 "항공사가 최초로 운항을 시작할 때 운항증명을 내주게 돼 있는데, 최초의 운항증명이 나가고 나서 항공기 보유대수가 일정 대수가 되면 최초 나간 운항증명을 다시 한번 처음 나가는 수준으로 꼼꼼하게 살펴보겠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항운영증명에 대해서도 "새로 공항이 건설되면 운항증명을 받고 이후엔 사실상 중간에 바뀌는 내용만 심사해 왔는데, 이제는 주기를 정해서 아예 최초 공항운항증명이 나가듯 다시 한번 꼼꼼하게 보겠단 내용"이라고 했다.
항공감독관도 현재 30명에서 약 40% 이상 증원하고, 항공사·기종별 전담감독관을 배정하는 등 감독 역량 강화를 추진한다.
관제사도 국제기준에 맞춰 자격·한정발급·기량 유지 등 전 과정을 국가(교통안전공단 위탁)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관제사의 기량과 비상상황 대응 능력을 주기적으로 평가해 기준에 미달하는 관제사는 교육을 강화한다. 또 활주로 정지선등, 침범 경보시스템 등 관제 보조장비를 확충해 관제 품질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국적 항공사 면허 관리도 강화한다. 신규 면허 발급 시 항공사의 안전투자 능력(자본금)과 인력·장비 확보 여부를 면밀히 검토한다. 특히 현재 면허기준상 국제여객 150억 원, 국내여객과 국제화물 50억 원인 자본금 확보기준은 2009년 마련돼 지금의 경제규모·국민소득 여건과 맞지 않는다고 보고 올해 상반기 중 상향을 추진한다.
이미 면허를 발급받은 기존 항공사도 면허 발급기준 충족 여부를 주기적으로 심사할 예정이다.
방위각시설·이마스·조류탐지레이더 등 2548억 투입 계획
지난 22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 관계자들이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현장 조사하는 모습. 연합뉴스공항시설 개선과 관련해 앞서 국토부는 전국 공항 15곳 중 7곳의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 및 지지대)을 개선하고, 4곳엔 이마스(EMAS·활주로 이탈방지 시설) 설치를 검토하는 내용의 '고항시설 안전 개선 방안'을 지난 1월 22일 발표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무안·여수 콘크리트 둔덕 밀고 포항 '이마스' 도입 검토"]
이어 2월 6일엔 전 공항 조류탐지 레이더 도입 및 충돌예방 전담인력 확충 등의 조류충돌 예방활동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관련 기사: 조류탐지 레이더 全공항 도입…충돌예방 전담인력 대폭 확충]
국토부는 이 같은 4개 분야 대책(조류탐지 레이더 및 이마스 도입, 로컬라이저 및 기타 공항시설 개선) 총사업비를 2548억 원으로 책정,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서도 재난 대응 능력 강화 항목으로 433억 원 추가 투입 계획을 반영한 상태다. 다만 실제 예산 투입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다.
다만 △공항시설 개선 △항공사 안전경영 투자 유도 △정부·당국 감독역량 강화 외에도, 그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돼온 별도의 항공안전청 설립이나 현행 국토부 산하에 있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분리·독립이 빠진 점은 이번 혁신방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 혁신방안을 논의한 항공안전혁신위원회 항공운항 안전분과에선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권고 및 해외 사례를 고려해 항공안전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 항공안전 전담조직 설립을 권고했다.
사고조사위와 관련해서도 ICAO 규정(국가 항공 당국이나 그 외 조사에 개입하거나 객관성을 저해할 수 있는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독립돼야 한다) 및 미국 연방기관 NTSB(국가교통안전위원회)나 일본 JTSB(운수안전위원회)처럼 선진국 수준의 법적 지위와 인사·예산 독립성을 갖춘 기관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항공안전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논의를 총괄해온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이날 항공혁신방안을 발표한 뒤 가장 시급한 혁신과제로 항공안전청 등 별도의 조직 신설 설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채 위원장은 "그동안 이런 위원회가 2013년(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착륙 중 충돌 사고 후속) 1차, 2016년 2차(LCC 안전 강화)에 이어 올해 세 번째"라며 "1차, 2차를 거치며 여러 보완을 많이 했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조직이 대체로 정상가동이 안 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대형 사고가 터지고 나면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하지만, 항공안전을 전담할 별도의 조직과 예산이 공고하지 않다 보니 '땜질' 처방에 그치고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 뒤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는 취지다.
채 위원장은 이어 "국가의 여러 부처와 조직이 있는데, 근본적으로 항공안전이 상당히 위험한 일을 다루는 중요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인적조직이나 자원이 제대로 안 갖춰지고 있어 근본적으로 얼마나 개선이 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직적 문제, 수를 늘리고 좀 확고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항구적으로 개선되지 않겠느냐 하는 걸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큰 조직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혁신위원회 내에서 논의가 있었다"면서도 "현 조직체계의 장단점과 그 대안의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관계기관과 계속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주 항공정책실장은 "기존 두 차례의 대책이 항공사를 대상으로 역할을 많이 주문하고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대책은 공항 인프라시설 개선과 정부 당국의 항공안전감독체계 강화 방안을 포괄한 것"이라며 "조직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관계기관과 논의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항공 참사 원인을 조사 중인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 1월 27일 ICAO에 예비보고서를 공식 제출하고, 현재는 엔진 및 부품 정밀분석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