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의 대북 양면전략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북한 비핵화 목표'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로 부르는 유화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지난 13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대화에서 더 강하게 나왔다.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는 북한은 확실히 뉴클리어 파워"라며,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함께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를 재구축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고 기대감이 일게 했다.
미 국무부가 '북한 비핵화 목표'를 거듭 확인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과 같은 선상에 두는듯한 발언은 어찌 보면 혼란스럽다.
다만 이런 메시지는 위에서 띄우고 아래에서 목표를 확인하며 북한을 대화로 나오도록 하는 압박하는 양면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사무총장과의 대화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핵무기를 언급하며 "그 수를 줄일 수 있다면 멋진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러시아와 중국의 핵무기를 감축하는 '멋진 성과'는 핵군축 협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역시 '많은(a lot)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북한도 그 틀에서 접근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실태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북한이 '뉴클리어 파워'라는 트럼프의 현실 인식과 '북한 비핵화'라는 미국 국무부의 최종 목표는 결국 현실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하되 중간에 핵동결과 핵군축 등 중간 단계를 설정하는 수순으로 절충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 시절의 미 국무부도 "비핵화는 하룻밤에 일어나지 않으며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취해야 할 중간 단계가 있다"면서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북한과 미국이 지난 2019년 10월 마지막으로 만난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회담이 결렬은 됐지만 일정한 공감대가 있었다는 점도 거론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과 미국은 스톡홀름 회담에서 비핵화라는 최종목표는 설정하되 장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핵동결 및 영변 핵시설 해체를 민생분야 대북제재 해제와 바꾸는 스몰딜, 즉 핵군축과 같은 과정을 통해 비핵화를 이룬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코로나19와 트럼프의 재선 실패로 스몰딜은 다음으로 넘겨야 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3년 뒤인 2022년 9월 '핵무력정책법'까지 만들며 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북한이 트럼프 정부라고 해서 비핵화 목표의 협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도 미국에 대해서는 핵 무력을 과시하지만 수위는 조절하는 양면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북한이 우라늄 농축기지에 이어 미완성의 핵잠수함 건조현장을 갑자기 공개한 것은 핵능력을 안보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 등을 상대로 다양하게 활용할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미훈련과 미국 전략자산의 감축, 한반도 안보환경의 재조정, 경제적 이익 등 실리가 있고, 미국이 제기하는 '비핵화 목표를 먼 미래의 공허한 목표로 차단할 수 있다면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과 2019년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은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까지 자신의 성과로 돌리는 것은 러·우 전쟁의 종전만이 아니라 향후 북한과 협상에서도 이른바 '멋진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노벨평화상에 대한 트럼프의 욕망도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을 주요 과제로 꼽음에 따라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의 큰 방향이 잡히면 그 다음으로 북한과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1·2차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했다면, 앞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를 건너뛰거나 양보를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