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11시경 대통령 비상계엄으로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가 155분 만에 '무효'를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우 의장은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한남동 공관을 출발해 약 30분 만인 오후 11시쯤 국회에 도착했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경찰이 에워싸고 있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고 우 의장이 탄 차량 역시 경찰에 의해 출입이 제지됐다.
 
그러자 우 의장은 차에서 내려 경찰 병력이 없는 국회 담장 넘었고, 곧바로 본청으로 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 개의를 준비했다.
 
당시 우 의장이 넘은 국회 담장의 높이는 성인 남성의 키높이 남짓이었다. 1957년생인 우 의장은 올해 67세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의 대한민국 의전서열은 대통령 바로 다음인 2위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김용민 의원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개의를 요청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재석190인, 찬성190인으로 가결됐다. 윤창원 기자
국회 본청에 들어간 우 의장은 자정쯤 온라인 기자회견을 자처해 "비상계엄 선포에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 하겠다"며 "국민 여러분은 국회를 믿고 차분히 상황을 주시해달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우 의장이 본회의 개의를 준비하는 동안 국회 본청에서는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계엄군과 이를 막아서는 의원 보좌진들이 대치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은 "당장 개의해서 계엄해제 요구 안건을 상정하라"며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했지만, 우 의장은 "절차적 오류 없이 의결해야 한다.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다"면서 자제했다.
 
우 의장은 안건이 올라오자 12시 47분에 본회의를 열었다. 그러면서 "밖의 상황을 잘 안다. 이런 사태에는 절차를 잘못하면 안 된다. 비상한 각오로 다 바쳐서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은 오전 1시쯤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우 의장은 국회의 해제 요구안에 따라 비상계엄이 공식 해제될 때까지 본회의장 문을 닫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공식 해제 때까지 본회의를 계속 열어두기로 했다.
 
결국 오전 4시 30분에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됐고, 한덕수 국무총리를 통해 이를 확인한 우 의장은 5시 50분쯤 회의를 정회했다. 산회가 아닌 정회를 한 것은 언제든 회의를 다시 열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다.
 
우 의장은 당분간 국회 본청 집무실에 머무르면서 사태 수습과 추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응할 방침이다.

우 의장은 이날 오전 계엄군의 전날 밤 강제 진입에 따른 국회 피해 상황 등을 점검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이번 계엄사태와 관련해 국회 외곽 경비를 총괄해온 국회경비대장의 국회출입금지를 김민기 국회사무총장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된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날 오전 계엄군에 파손된 유리창 등 국회의사당 피해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