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고용안정 대책인데…오히려 '대량 실업'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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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 특별대책 이름 걸었지만 실제로는 '실업 지원'에 집중
정규직 고용 대책이 대부분…정작 취약계층 지원은 '언 발 오줌누기' 수준
게다가 휴업·휴직보다 권고사직이 노사 윈-윈이 되버리는 정부 지원 설계
노동계 "정부, 해고 금지 입장 세우고 취약계층 고용 유지에 집중해야" 촉구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고용 대책을 내놨지만, 실제 현장에서 효과를 거두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데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휴직보다 퇴직을 유도하는 식으로 지원 방안이 짜여 있어 추가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역대 최대 10조 고용안정 특별대책…정작 무게중심은 '고용 안정' 아닌 '실업 지원'?

정부는 지난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코로나19 위기대응 고용안정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일자리 정책은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조건 개선에 초점을 맞췄지만, 코로나19 비상사태로 대규모 실업이 예상되면서 이번 대책은 '고용 안정'을 제목으로 달았다.

그런데 실제 책정된 예산을 살펴보면 고용 안정에 관한 예산은 2조 4천억원에 불과하고, 일자리 창출에는 3조 6천억원이 책정된 반면 실업자 지원에는 4조 1천억원이 배정됐다.

사실상 정부가 대규모 실업 사태를 전제로 하고 이번 대책을 준비한 이유는 우선 이미 대량 실업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취업자 수는 금융위기가 있던 2009년 5월 이후 10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어 전달보다 19만 5천명 감소했다. 반면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비경제활동인구도 51만 6천명 증가해 역시 2009년 3월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정흥준 부연구위원은 "정부 대책은 상당히 큰 규모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어 걱정스럽다"며 "지금 얘기하는 대책들은 3차 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야 하는데, 정작 2차 추경안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고용 대책도 정규직이 우선…고용보험 사각지대 노동자는 10%만 지원 가능

그나마 나온 고용 대책 중 대다수는 고용보험을 재원으로 삼아서 정규직 노동자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프리랜서 등 취약계층은 약 1천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에게 주어지는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 지원 대상은 겨우 93만명에 불과하다.

노동부 관계자는 "모든 취약계층이 지원 대상이 아니고, 소득이 급격히 감소한 사실을 확인해 선별하기 때문에 지원 대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해명했다.

뒤집어 말하면 실제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따라 대책을 세운 것이 아니라, 배정한 재원 규모에 맞추기 위해 지원의 문턱을 높이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 부연구위원은 "정부로서는 고용보험기금으로 금방 지원책을 만들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위기상황의 고용대책도 기금을 꼬박꼬박 낸 정규직 위주로 이뤄진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한 만큼, 현재 정책이라도 속도를 내서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민단체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정진우 정책위원장은 "근본적으로 근로기준법과 4대보험의 보호 밖에 놓인 노동자가 이처럼 많다는 사실이 위기 상황에서 다시 드러난 것"이라며 "시혜적으로 돈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고용 안정을 지킬 수 있도록 고용·사회 제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사 모두 휴직보다 사직이 이득…"영세사업장 노동자일수록 일을 그만둘 것"

더 나아가 고용을 지키려는 정부 특별 대책의 빈틈이 모여 오히려 깔대기처럼 실업을 유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사업장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사업주에게 휴업 수당의 90%를 지원해 휴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영 악화 등 사업주의 책임으로 사업장이 문을 닫는 '휴업'을 할 때에는 반드시 기존 임금의 70%인 휴직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수당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영세사업장은 나머지 10% 부담도 어려워서 노동자들에게 무급 휴직이나 권고 사직을 종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오민규 정책위원은 "실제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책에 대해 '유명무실한 제도이니 무시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며 "일단 10%라도 사용자 부담은 피하고, 나중에 사람을 구하면 된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 다시 살펴보면 무급휴직을 선택하느니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 편이 이득이다.

정부가 27일부터 무급휴직자를 월 50만원씩 3개월 동안 지원하는 '무급휴직 신속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지만, 금액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본래 이·퇴직이 잦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라면 퇴직 전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인 실업급여를 받는 편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실업 상태인 편이 낫다.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휴업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노사 모두에게 사실상 '권고 사직'이 유일한 선택지나 다름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솔직히 뮤급휴직보다 실업 상태인 편이 근로자에게 더 유리하다"며 "기업 규모가 클수록 기존 일자리를 지키려 휴직을 선택하겠지만, 영세사업장 근로자로서는 무급휴직 상태와 실업 상태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 "정부가 해고금지 원칙 세우고 실업보다 고용 안정에 초점 맞춰야"

노동계는 비상시국임을 감안해 단순히 사업장 지원을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가 일정 기간 동안 '해고 금지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하고 있다.

이미 이탈리아, 싱가포르, 프랑스, 일본 등 해외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정부가 민간 기업을 상대로 해고 중단 입장을 선언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전주시가 '해고 없는 도시'를 선언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대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높게 평가했다.

민주노총 송보석 대변인은 "이미 현장에는 해고가 예상되거나, 고용불안이 벌써 다가온 사업장이 많은데 명확한 해고 금지를 전제로 한 지원책이 없어 안타깝다"며 "일자리를 유지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과, 해고를 원천 금지하고 이를 전제로 지원하는 것은 엄격히 다르다"고 비판했다.

이를 위해 고용유지지원금 등 휴업 사업장에 주어지는 정부 지원을 노동자가 먼저 신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오 정책위원은 "노동자가 직접 신청하도록 하면 그 자체로 해고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약 사업주가 이를 거부할 경우 해고 회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권고사직을 선택하기 쉬운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실업급여 이상의 수준으로 지원해 고용을 유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권유하다'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휴업일수에 따라 최저임금의 70%를 고용보험에서 일괄지급하는 '코로나19 긴급휴업급여'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실업급여 못지 않은 지원액으로 퇴직 대신 휴직을 선택하도록 하되, 고용보험 기금을 이용해 사업주에는 재원 부담을 지우지 않을 뿐 아니라 휴업 확인서와 신청서만 제출하도록 해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권유하다' 정진우 집행위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휴직을 선택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본 경험도 거의 없고, 복잡한 서류를 준비해 증빙하기도 쉽지 않아 문을 닫거나 권고 사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주 부담이 사실상 없는 수준이 아니면 휴업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할 수 있는데, 갈수록 경제 위기가 가속화되고 고용사정이 어려워지면 결국 진일보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고용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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