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할인' 와인 세트…알고보니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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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할인상품 묶어 팔기…단품 살 때보다 더 비싸

자료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설을 맞아 실속 가격으로 내놨다'는 와인 선물세트가 오히려 바가지 가격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할인 가격에 판매하던 와인을 묶어서 팔거나 세트보다 낱개로 살 때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가 붙여놓고 부르는 건 평상시 할인가 "설이라 싸게 나왔어요"

지난 27일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이 백화점이 설 선물 와인세트로 선보인 상품에는 대부분 10~2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 써붙여 있었다.

싸지 않은 가격에 고객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자, 매장 직원들은 표시된 가격의 80%에서 많게는 절반 정도 할인된 가격을 불렀다.

언뜻 보면 설을 맞아 특별히 싸게 파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설 전부터 해오던 행사가격에 불과했다.

"설 와인 세트로 잘 나온 것이 있다"는 한 매장 직원은 A 이탈리아 와인 세트를 보여주며 "정상가는 15만 원이지만 10만 원에 드리겠다"며 고객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이 와인은 평소에도 한 병에 5만원이면 구매할 수 있던 제품이었다.

매장 맨 앞에 전시된 한 B 스페인 와인과 미국산 C 와인도 마찬가지. 한 세트에 17만 원, 14만 원이 각각 적혀있던 이 와인은 모두 해당 매장에서는 "설 할인을 적용해 10만 원에 해주겠다"며 고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귀가 솔깃해진 고객들은 "지금 사면 돈을 버는 셈"이라고 생각한 듯 지갑을 선뜻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와인 역시 낱개로는 한 병에 5만 원씩 팔던 제품이었다. 굳이'설이 아니어도 이 가격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행사 때 각각 5만원에 팔던 것들을 지금은 세트로 구성해 판다"는 직원은 "어차피 정상가보다 싼 셈이니 가격과 구성이 잘 나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 목동의 한 백화점도 마찬가지. 한 직원은 아르헨티나 와인 D 세트 하나를 보여주며 "원래 한 병에 3만 5000원씩 세일가로 판매하던 제품인데 이번에 설 선물 세트로 잘 나왔다"며 추천했다.

또다른 아르헨티나 와인 E 세트도 보여주며 "기존에 15만 원짜리 와인과 5만 원짜리 와인을 묶어서 이번에 20만 원에 나왔다"고 했다. "특별히 보여드리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와인에는 '370,000-> 200,000' 가격표가 붙여져있다. 평소 37만 원이나 하던 와인을 '설에만 17만 원이나 싸게'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설 전에도 17만 원 싸게' 살 수 있던 제품에 불과했다.

◈세트보다 단품으로 하나씩 살 때보다 더 비싸

와인은 평소에도 가격표에 적힌 소매가보다 적게는 5%에서 많게는 50%까지, 특히 이른바 '장터'라 불리는 대폭 할인 행사 때는 80~90%까지도 할인률이 적용되곤 한다.

언제 어느 때나 와인을 사러 가도, 와인 매장에 표시된 가격 그대로 값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를 아는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설·추석 같은 명절을 겨냥해 나온 와인 세트를 웬만해서는 구입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통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 고객들로서는, 비싼 와인 가격표에 빨간 가로줄을 쭉쭉 긋고 이보다 5만~10만 원이나 싸게 표시된 와인을 보면 '혹' 하기 마련이다.

특히 고객들은 와인 세트 구입시 돈을 조금만 보태면 나머지 한 병을 거저 얻는다는 느낌에 큰 고민 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

이렇다보니 설 와인 선물 세트가 단품으로 하나씩 살 때보다 더 비싸도 이를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실제 명동의 한 백화점에서는 평소 한 병에 3만 원 하던 인기 이탈리아 와인이 두 병 세트 구성으로는 9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한 칠레산 유명 와인 세트도 정상가 13만 원보다 할인된 가격인 10만 원에 판매했지만, 이는 평소에 백화점에서 한 병에 3만 5000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와인이었다.

매장 직원도 이런 사실을 실토했다. 한 직원은 "맞다. 설 전에는 3만 5000원에 팔던 것"이라면서 "지금 구매하시면 한 병씩 각각 고급 케이스에 담아 드리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평소 6만 원에서 6만 5000원, 비싸도 7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던 한 유명 아르헨티나 F 와인이 2병 세트로 22만 4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무려 10만 4000원이나 비싸게 책정하고 있는 것.

직원은 "이 와인은 낱개로 세일가 6만 원에 팔기도 했지만 지금은 따로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세일은 지난 주에 끝났고 지금은 세트 구성으로만 나와 있기 때문에 구매는 가능하지만 정상가인 12만 원에 사야한다"고 했다.

명동의 또다른 백화점 역시 F 와인 세트를 같은 가격에 팔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매장 직원은 "단품으로 사면 8만원까지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다른 직원은 "설 지나면 곧 장터가 열리니까 그 때 사시라"고 귀띔해주기도했다.

◈세트가 비싼 이유 "포장값 때문"… "꼭 그렇지도 않아"

백화점 직원들은 설 와인 세트가 단품보다 비싼 이유에 대해 "포장값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와인 상자나 세트 구성에 와인 오프너 등 악세서리들도 함께 넣기 때문에 1만~2만원 정도는 더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트 판매가가 낱개 판매가와 같은 상품들이 많고 오히려 저렴한 상품들도 눈에 띄는 점을 볼 때 포장값에만 원인을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객 김모 씨(59)는 "포장비가 수만 원에 달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포장 때문에 부득이하게 값을 올려야한다면 차라리 고객들에게 포장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한 백화점 직원도 "꼭 포장때문에 비싼 것은 아니다"라며 와인세트 가격 거품을 인정했다.

그는 "20만 원짜리 세트 포장케이스도 똑같고. 5만 원 세트 케이스도 똑같다"면서 "낱개로 사든 세트로 사든 가격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잘 나가는 제품들은 케이스값 빼도 잘 팔리니까 원래 가격에 해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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