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이 1930년대 말~해방 전 소녀라면?"…어느 탄원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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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께서 1930년대 말부터 해방 전까지의 소녀라고 생각한다면..그게 '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인권회복을 위해 탄원엽서를 쓴 전국의 중·고교생들의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귀가 눈길을 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은 2012년 제2차와 2013년 제3차 탄원엽서 보내기 운동에서 모인 엽서 6만여장을 23일 오후 일본과 스위스로 보낸다.

제3차 탄원엽서 보내기 운동에서 대상을 받은 김해삼계중학교 3학년 전예솔 학생은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I was not a human)"라는 문장으로 시작, 자신이 위안부 할머니가 된 심정으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전 양은 한복을 입은 소녀가 위안부로 끌려가던 날과 일본군을 보고 겁을 먹은 모습 등을 엽서에 그림으로 직접 그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려 애썼다.

엽서 후반부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유엔이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특별한 조치를 취할 때"라며 "그래야만 전세계의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같은 학교 3학년 박채원 학생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를 소개하며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이) 가능하다면 집회에 참석해 할머니들을 위로해달라"고 당부했다.

2012년에 모인 탄원엽서는 일본 정부에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수 학생이 일본어로 자신들의 생각을 펼쳤다.

일부 학생은 손바닥 크기의 엽서 지면이 모자라 A4용지를 덧붙여 장문의 글을 쓰기도 했다.

김해중앙여고 김미진 양은 "수상께서 1930년대 말부터 해방 전까지의 소녀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학생 대부분이 완곡한 어조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호소한 가운데 일부 학생은 엽서에 욕설을 많이 담은 탓에 발송이 취소됐다.

300통이 넘는다.

송도자 대표는 "공지를 하면서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학생이 있었다"며 "아무리 잘 못 된 역사지만 예의를 갖추고 요구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엽서를 걸렀다"고 설명했다.

시민모임은 이날 오후 2시 탄원엽서 발송에 앞서 통영시민문화회관 인근 위안부 추모비인 '정의비' 앞에서 탄원엽서의 의미와 취지 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다.

생존 최고령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97·경남 통영) 할머니도 자리를 함께한다.

기자회견에 이어 제2차 탄원엽서 2만 7,872통은 일본 중의원 회관 602호 아베신조 총리의 사무실로, 제3차 엽서 3만 9,213통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UNHCR)로 발송한다.

탄원엽서 보내기 운동은 2010년에 시작됐다.

시민모임은 1차 탄원엽서 2만 1,085통을 일본 중의원 회관에서 의원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2011년 2차로 진행하려던 운동은 당시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 한 해를 쉬고 2012년에 이어졌다.

시민모임은 그해 9월 탄원엽서 4만여 통을 국제우편으로 일본 정부에 보내려 했지만 당시 일본이 우경화로 치닫는 상태인데다 발송 비용까지 모자라 보류했다.

이번에 탄원엽서를 분류한 결과, 우체국 규격 3호 박스(가로 34㎝ 세로 25㎝ 높이 21㎝) 21개 분량이 나왔다.

발송비용에는 모두 200여만원이 든다.

시민모임은 전국에서 모인 기부금 등을 모아 이 비용을 충당했다.

송도자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 간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관한 문제"라며 "뒤늦게 탄원엽서를 모두 보낼 수 있게 돼 다행이면서도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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