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만행 고발편지 1만통에 담긴 中피해자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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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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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 간 일본에 전쟁피해 배상을 요구해온 중국의 시민운동가 퉁쩡(童增)이 최근 자국 언론에 공개한 중국인 피해자들의 편지 1만여 통에는 일제의 무자비한 만행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강제노역 피해자인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의 리(李) 모씨는 편지에서 "1942년 1월부터 1945년 말까지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 중국인 노무자들은 매일 산속의 동굴에서 중노동을 했는데 일본 측이 식사로 준 것은 돼지사료로 만든 덩어리였다. 그마저도 배불리 먹지 못했고 사계절 똑같은 옷을 입어 극심한 추위와 더위에 시달렸다. 많은 중국인이 일본 작업반장에게 맞아 죽었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는 도망치다가 산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기도 했다. 처음에 함께 끌려간 400여명의 노무자 가운데 1945년 일본이 패망했을 때까지 살아남은 이는 130여 명뿐이었다"고 증언했다.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산시(山西)성 위(盂)현의 허우차오롄(侯巧蓮) 할머니(1999년 사망)는 "1942년 3월 일본군이 마을에 쳐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함께 붙잡혔다. 한밤중에 검은 얼굴의 일본군관이 나를 방으로 끌고 가 마구 때린 뒤 성폭행했다. 당시 내 나이는 14세였다. 그 날 이후로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20여 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고 몸은 완전히 망가졌다. 70여일이 지난 뒤 가족이 양 20여 마리와 나귀 한 마리, 밀 250㎏, 은화 200여개를 가져와서야 나와 아버지는 풀려날 수 있었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적었다.

중국 현지 강제노역에 시달린 충칭(重慶)시의 우(吳) 모씨는 "1941년 6월 일본군이 침략했을 때 우리 마을에서는 모두 63명이 잡혀갔다. 어떤 사람은 노무자가 됐고 어떤 이는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일본군은 감옥 안에서 여교사 2명을 윤간했다. 나의 큰아버지도 일본군에게 끌려가 죽었고 사촌형은 수년간 강제노역을 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너무 울어서 눈이 멀었다"고 전했다.

중국인 피해자들의 편지 중에는 일제의 민간인 대량 학살에 대한 증언도 있었다.

안후이(安徽)성 학살 사건의 한 생존자는 "1938년 음력 4월에 일본군이 마을에 쳐들어오자 나의 큰아버지는 가족과 친척 100여 명을 데리고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도망치던 중 한 무리의 일본군과 마주쳤고 그들은 우리에게 기관총을 난사해 그 자리에서 40여명이 죽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갓난아기도 있었는데 총소리에 놀라 울음을 그치지 않자 일본군이 총검으로 아기의 입을 찌른 뒤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만행도 저질렀다"고 적었다.

이들 편지를 포함해 중국인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1만여 통의 편지를 보관 중인 시민운동가 퉁쩡은 "편지들은 1990년대 초에 받은 것이어서 피해 당사자 대부분이 일본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서 "편지 속 증언의 내용을 정리하고 컴퓨터에 저장해 일제의 만행을 후대까지 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매체들은 10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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