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대자보.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5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전 세대로 번지는 분위기다.
대학가에서 시작된 대자보 바람은 고등학교를 넘어 초등학교까지 닿았고, 대자보에 공감하는 기성세대들의 지지도 넘쳐나고 있다.
지난 16일 대구의 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서툰 글씨로 대자보를 적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했다.
글에 따르면 이 초등학생은 중학생 형과 누나들이 대자보를 작성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 대자보를 쓰게 됐다. 학생은 "아직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진지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라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학생은 대자보에서 "지금 이 사회는 잘못됐습니다. 처음에는 고려대가 안녕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여기에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는 노암 촘스키의 말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을 인용해 밀양 송전탑 공사, 철도·의료 민영화 논란, 국가기관 선거개입 등을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시간에 배웠던 부정선거가 재현될 줄은 몰랐습니다"라면서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음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했다.
서툰 글씨로 쓰인 초등학생의 대자보에 네티즌들은 응원과 격려를 쏟아냈다. 어떤 네티즌들은 어른임에도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출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도 대자보 바람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대자보를 작성해도 학교 측의 허가를 맡지 못해 붙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같은 날, 경기 모 중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학생은 철도노조의 총파업 선언문 중 "탈선을 향해 질주하는 열차를 잠시 멈추고 선로를 바로 잡으려 합니다. 다시 달리기 위해 잠시 멈춥니다"라는 문구를 이용해 대자보를 작성했다.
이 학생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 안녕하십니까? 요즘 날씨처럼 춥고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안부를 전했다.
이어 서울시 교육청의 시국선언 청소년 시찰, 철도 노조 파업, 박근혜 정부의 공약 폐기,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공공부문 민영화 등의 문제를 열거하고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학생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성한 글에 따르면 이 대자보는 선생님들의 반대로 교내에 게시되지 못했다.
앞서 대전 모 여고 학생은 교내에 대자보를 게시했다 교장실에 불려가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이 학생의 대자보에는 국가기관 선거개입, 철도 노동자 직위해제,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등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외부로부터 항의가 빗발치자 학교 측은 "교장 선생님은 이 학생을 혼낸 적이 없고, 대자보를 쓴 경위를 묻고 상담한 정도"라면서 "교장 선생님의 재가 없이 교내에 게시물을 부착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대자보를 붙이려는 다른 고등학생들도 "선생님께 허락 받으러 갔는데 논의해 보신다고 하시더니 안 된다고 하셨다. 고등학교에서는 정치색이 있는 활동은 안 된다고 하더라", "대자보를 보여 드렸더니 교사도 학생도 이념적인 것은 금지돼 있다고 답장이 왔다" 등의 이야기를 전했다.
서울여대에 부착된 대자보와 할아버지의 피켓.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들의 대자보에 화답하는 기성세대들의 응원도 줄을 이었다.
지난 15일 고려대 앞에는 바른 글씨체로 쓰인 작은 피켓이 놓였다.
자신을 대전 출신의 62세 '할배'라고 밝힌 노인은 스스로를 '안녕치 못한 할배'라고 칭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네. 정말 고맙소. 모레부터 시험이라는데…"라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16일에는 자신을 고려대 82학번이라고 밝힌 한 중년 여성이 짧은 응원글을 붙이기도 했다.
여성은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에게 "너희들에게만은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는데 너를 키우면서 부끄럽게도 성적과 돈에 굴종하는 법을 가르쳤구나"라며 "미안하다. 이제 너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낸다"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 응원글은 "너희들의 엄마가…"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