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느끼고 있는 삶의 불편함과 부당함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 삶에는 어떠한 변화가 찾아올까.
소수 권력자들이 영향력을 키울 목적으로 소중한 나의 가족과 이웃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본다면…….
영화 '변호인'은 개인은 물론 사회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삶의 자세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돈을 좇던 한 변호사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는 여정을 통해서다.
이 점에서 변호인은 현명한 영화로 다가온다. 상업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쉽지만 분명하게, 재밌지만 뜨겁게 그 답을 내놓는 까닭이다.
1980년대 초 부산의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탁월한 사업수완 덕에 평생의 경제적인 안정까지 보장받을 일의 성사를 앞두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석은 어려운 시절 밥값 신세를 지던 국밥집 주인 순애(김영애)의 아들 진우(임시완)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앞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순애의 애원으로 함께 간 구치소에서 진우의 모습을 보고는 충격에 빠져 이 사건의 변호를 자청한다.
영화 변호인의 미덕 중 하나는 주인공을 신화적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송우석은 가방끈 짧은데다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는 사람도 없다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소시민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당시 한국 사회를 휩쓴 부동산 열풍과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엮어 큰 돈을 만지게 된 우석은 집에 가져간 돈을 세는 아내를 보며 "좋나"라고 거드름을 피울 줄 아는 가장이다.
'변호사 명예 혼자 다 깎아내린다'는 주변의 질타에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라며 목청을 돋우는 약간의 속물 근성도 지녔다.
그러한 우석은 물질만능사회에서 돈이 없을 때 겪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아는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극중 우석은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부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데모 한다고 바뀔 세상이냐. 계란 아무리 던져 봐라. 바위가 부서지나"라고 말할 만큼 사회 변혁에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군부의 일방적인 입장을 전달하는 데 그치던 언론에 대해서도 "방송하고 신문을 안 믿으면 뭘 믿을까"라고 반문할 정도로 한정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던 대다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국밥집 주인에게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으로 질리도록 그 가게를 찾고, 사무실 집기를 들일 때도 인부들과 함께 땀흘려 일하는 등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려는,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애쓰는 정 많은 인물이 우석이다.
그런 그에게 국밥집 주인 순애가 얼빠진 모습으로 찾아와 "변호사 선생님이 가서 우리 진우 절대 빨갱이 아니라고 말해 줘"라며 절규했을 때 이를 보는 우석의 심정은 어땠을까?
서로 부대끼며 오랜 동안 살아 온 소중한 이웃의 아픔을 무심코 지나칠 사람은 결코 없는 법이다.
야학을 운영하던 대학생들을 용공조작사건으로 엮어 법정에 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는, 부조리한 정권의 실체를 우석이 알게 된 것은 특별한 운명적 계시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가 곁에서 늘 봐 온 국밥집 아들 진우가, 모진 고문 탓에 온몸이 멍투성이가 돼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구치소 접견실에 않아 있는 모습을 봤을 때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석은 자기가 본 부조리한 세상의 맨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의 아픔에 공명하려 했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인 법을 무기로 싸울 용기를 냈던 것이다.
이후 영화는 한 시간여 동안 우석이 진우 등 대학생들을 변호하기 위해 벌이는 다섯 차례의 공판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온힘을 쏟는다.
우석이 막강한 권력을 상대로 1대 다수의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묻어나는 진한 인간애는 엔딩을 장식하는 마지막 법정 신에서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빚어낸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특히 주연을 맡은 송강호는 경제적인 안위만을 좇는 속물 변호사와 부당한 공권력의 희생양이 된 대학생들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인권 변호사라는 양 극단의 캐릭터를 하나로 이어내는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가는 법이다"최근 사석에서 만난 어느 한학자에게 올해를 갈무리하고 내년을 활짝 열어젖힐 키워드를 하나 꼽아달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귀정"이라고 답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 말은 '어떤 일이 잘못돼 가다가 바른길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딘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데 공감한 까닭이리라.
그 공감의 정도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속담처럼 소수 권력자의 영향력이 몹시 커지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풍자되는 극단의 물질만능 세상에서라면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치다.
이런 때일수록 "제 한몸 간수 잘하는 게 상책이야" "내 코가 석 자인데 괜히 험한 꼴 당하지 말자"는 식의 무사안일주의적 처세는 큰 힘을 얻기 마련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처럼 지금의 엄혹한 시기만 버텨내면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적이지만 어찌 보면 다소 강요된 듯한 믿음이 널리 퍼진 까닭은 아닐까.
그 믿음에 기대어 이전 어느 세대도 이루지 못한 높은 수준의 스펙을 쌓아 온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 순간에도 좁은 취업문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바로 옆에 똑같은 이유로 자괴감에 휩싸인 또래들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거고, 계란은 산 거다" "국민이 못 산다고 법의 도움도, 민주주의도 못 누린다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국가란 국민입니다"와 같은 대사들이 이러한 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인간의 자유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칸트(1724-1804)는 "사람을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