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기관 머물다 실종되는 치매 노인들…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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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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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허술' 전문시설 급증…실종되는 치매 환자 잇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지자체 "인력 부족해 감시 역부족"

 

춘천에 사는 박모(57·여)씨는 실종된 친정아버지(77)를 26일째 찾고 있다. 지난달 12일 강원도의 한 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에서 사라진 아버지는 치매환자다.

치매 투병 10년.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면 병세가 나아질까 싶어 서울에서 강원도로 모시고 내려온 건 지난해다.

그러나 맞벌이를 하며 병환이 있는 어머니까지 모시는 상황에서 평일 하루 4시간의 재가 서비스로는 도저히 치매 아버지를 제대로 모실 수가 없었다.

요양기관으로 모신지 두 달 만에 아버지는 실종됐다. 경찰, 119구조대, 면사무소 직원, 일가친척과 함께 쉬지 않고 아버지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입동(立冬)이 가까워지는데도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9월에는 아버지가 안 떨어지려고 하시는 걸 억지로 떼어놓고 애들과 울면서 시설에서 나왔거든요. 집보다야 낫겠지 싶었는데…." 박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요양기관에서 생활하다가 실종되는 치매 노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경남 창원에서는 요양원 생활을 하던 이모(71·여)씨가 병원 진료를 받으러 외출했다가 실종돼 3㎞ 정도 떨어진 공사장 풀숲에서 이틀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5일에도 강원 횡성의 한 요양원에서 파킨슨병을 앓는 김모(50)씨가 사라져 21시간 만에 수색대에 구조됐다.

이윤을 목적으로 한 허술한 노인 장기요양시설은 우후죽순 생겨나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는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돈벌이' 시설 난립…관리 '허술'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따르면 전국 장기요양기관 수는 2008년 1천543개에서 지난해 4천660곳으로 3배 넘게 늘었다.

5년 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정부가 요양원과 요양공동생활가정 등 입소기관(요양병원 제외)에 급여를 지원하고, 등록 규정을 신고제로 했기 때문이다.
일정 기준의 시설과 인력만 갖추고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건보공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아가며 누구나 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설립이 쉽고 수입도 안정적인 요양원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특히 정원이 9명 이하인 공동생활가정은 건물을 사들이지 않고도 설립할 수 있어 영세한 사업자들까지 뛰어들었다. 매달 월세를 줘가면서 소규모로 운영되는 이런 공동생활가정은 현재 전체 요양시설의 47%(2천200여 곳)를 차지한다.

문제는 서비스 질이 시설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무더기로 시장에 진입한 사설 요양기관 중 상당수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재정적 여력이 부족하다.

요양보호사 1명당 정해져 있는 입소자 수를 초과하거나 안전 설비 등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다.

요양원은 보호사 1명이 돌보는 입소자 수가 최대 2.5명으로 정해져 있지만, 대부분 2교대나 3교대 근무로 운영돼 보호사 1명 당 환자 수는 7∼8명에 이른다. 밤에는 보호사 1명이 환자 20∼30명을 돌보기도 한다.

정원이 9명 이하인 공동생활가정은 입소자 3명당 요양보호사 1명 외 간호(조무)사 또는 물리(작업)치료사도 1명 둬야 하지만 규모가 작다 보니 제대로 된 업무 분담 없이 뒤섞여 일하기 일쑤다. 자격증 소지자인 가족을 서류상으로만 고용하고 실제로 출근시키지 않는 일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시설급여를 부당하게 받아 챙겨 건보공단에 적발된 요양기관은 4만4천38곳, 부당지급된 돈은 14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를 감시해야 할 건보공단과 지자체는 인력부족을 이유로 관리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다.

서류 심사를 통해 급여를 지급하는 건보공단은 현장 확인이나 사후 관리는 지자체에 떠넘기는 상황이다. 지자체는 전담인력 배치는 고사하고 민원이 들어오지 않으면 1년에 한 번 하는 형식적인 실태조사에만 그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치매 질병의 특성상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관리감독도 없이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허술하게 운영하는 시설에서는 언제든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주봉(56) 치매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모임 회장은 "치매 환자는 끊임없이 걷는 특성이 있어 하루 이틀 내에 찾지 못하면 수개월 후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될 확률이 높다"면서 "정부 지원으로 요양시설이 난립하지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가보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 '허가제' 전환…엄격한 감시 시스템 구축해야

지난 6월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이 장기요양기관의 개설방식을 현행 지정·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도 불량시설의 난립을 막으려면 허가제가 필수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인력이 부족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요양기관에 대해서는 진입 단계에서부터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000년부터 수발보험제를 운용하는 일본은 요양 서비스 질을 담보하기 위해 시설 허가제를 시행한다.

개인 사업자는 요양기관을 운영할 수 없고, 지자체가 직영하거나 사회복지법인에 위탁하는 형태로만 운영된다. 또 불시에 시설을 점검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약 5년마다 새로 인증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1996년부터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해온 독일은 부실 요양시설에 '삼진아웃제'를 적용하고 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3번 이상 경고를 받고도 개선하지 않는 요양시설은 지자체와 계약이 해지된다.

강원지역 한 지자체 복지과 관계자는 "다른 업무들을 병행하다 보니 요양기관 수십 곳의 신규·변경·폐업 등 서류 작업만 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라며 "제대로 된 일부 기관들만 걸러서 설립 허가를 내 주고, 전담 인력을 배치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접수된 치매환자 실종 사고는 2009년 5천573건, 2010년 6천569건, 2011년 7천604건, 2012년 7천650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도 9월 기준으로 벌써 6천158명의 치매환자가 실종됐다.

정확히 구분된 통계는 없지만, 자택에서 실종된 경우가 가장 많고 요양기관에서 실종된 경우는 소수라고 경찰은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요양보호사가 상주하고 국가보조금도 투입되는 전문기관에서 치매 환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는 단 1건이 발생하더라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영신 한국노인녹지중앙회 상임이사는 "길을 잃고 헤매는 치매 환자 대부분이 등급 판정 경계선에 있다"면서 "이들을 위한 기관은 한정돼 있는데, 요양원인지 양로원인지도 분간도 잘 안 되는 사설 기관들이 난립해 환자 가족들로서는 대책이 안 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장기요양기관을 엄격한 허가제로 운영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지자체나 사회복지 법인이 직접 운영하는 안정적인 시설을 늘려야 한다"면서 "특히 급여를 주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행정처분권이 있는 지자체가 유기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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