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의 한글②]한국어, 그들에겐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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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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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니 '일베어'니 한글을 팽개치는 시대. 하지만 멀고도 가까운 60만 명의 재일동포들은 지금도 무관심과 갖은 역경 속에 우리 말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일본 현지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의 뜻을 다시 새겨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고국 무관심에 두 번 웁니다
②한국어, 그들에겐 '자신감'
③중1에 '가갸거겨' 배우는 까닭
④민족학급 '핏줄의 마지노선'
⑤이대로 가면 '일본만 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건국학교 전경. (사진=이대희 기자)

 



지난달 24일 일본 오사카(大阪)시 스미요시(住吉)구에 위치한 백두학원 건국학교. 교정에 들어서자 귀에 쏙쏙 박히는 한국어가 들려왔다.

오색 색동저고리를 본따 장식한 식당에는 마침 점심시간을 맞아 급식을 배식받는 아이들로 왁자지껄한 모습이었다.

복도를 지나는 '이방인' 기자에게 학생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딘가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려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학교 2층 체육관. 초등학교 고학년 20여 명이 모여 북과 장구, 꽹과리 등을 들고 사물놀이를 연습하고 있었다.

체육관 전면 왼쪽에는 한글로 쓰여진 교가, 오른쪽에는 애국가가 걸려 있었다.

◈ “건국학교 학생 한국말 못한다는 고국 언론 보도로 상처”

색동저고리를 본따 장식한 식당에서 건국학교 학생들이 점식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대희 기자)

 



건국학교 역사는 무려 67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보다 2년 앞선 1946년, 미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들의 손으로 세워진 학교다.

대한민국 정부가 세우거나 설립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다른 해외 한국학교와는 역사가 다르다.

하지만 이 학교는 지난 1월 국내 일부 언론의 그릇된 보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이 학교 최철배 교장은 “건국학교 학생들이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배우고 일장기 앞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한다는 식으로 보도가 됐었다”면서 “강력하게 항의해 ‘직접 취재 못하고 제공된 자료만으로 기사를 써 미안하다'는 사과문도 직접 받았다”고 말했다.

최 교장은 “건국학교 학생들이 한국말 못한다는 말은 옛날 생각”이라면서 “과거에는 일본 내부의 차별로 한국어를 안 쓰려 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한류 붐으로 오히려 일본인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고 설명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 학교의 재학생은 410명 수준. 학생들의 국적 비율은 75%가 대한민국에 뿌리를 둔 아이들이고 나머지 25%는 순수한 일본인이다.

고등학생의 경우 1~3학년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한 주에 4시간을 배우고 한국문화코스를 선택할 경우 7시간을 더 배울 수 있다.

여기에 1~2학년은 한국사와 재일동포사도 3시간씩 배우게 돼 있다.

특히 건국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국어를 꾸준히 가르치기 때문에 이 과정을 전부 이수할 경우 한국어 구사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 “입시·경쟁 위주 한국 국어보다 일본서 배운 한국어 실용적”

건국학교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으로 사물놀이를 연습하고 있다. (사진=이대희 기자)

 



중앙대에 합격하고 서울대와 고려대의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황미나(17) 양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지만 한국어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황 양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가 더 편하긴 하지만 유치원부터 한국어를 꾸준히 배웠다”면서 “내년에 고국으로 가 대학교에 다닐 때 더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한국 TV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일본으로 이주한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정착한 박도영(17) 양은 15살 까지 한국의 초·중·고 정규교육과정에 속했지만 건국학교의 한국어 교육을 높이 평가했다.

박 양은 “한국에서 6개월 고등학교에 다니다 왔는데 '야자'도 없고 공부에 강박적이지도 않다”면서 “한국 학교와는 달리 경쟁적으로 공부하지 않아 나도 몰랐을 한국어 표현을 배웠을 정도로 실용적이고 재밌다”고 강조했다.

박 양은 울려퍼지는 사물놀이 소리를 가리키며 “저 친구들은 전통을 이어가겠다며 매일 악착같이 연습한다”면서 “한국에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치열하고 절실함이 느껴져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 “재일동포가 왜 한국어를 못하지?” 컴플렉스로 이어지는 시선

초등학생 교실 한 켠에 놓인 한국어 교과서. (사진=이대희 기자)

 



초등학교 1~6학년을 가르치는 국어 담당 황영순(44·여) 교사는 민족학교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를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교사는 “한국어는 재일동포 아이들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기본”이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5세에게 한국어는 사실상 제2외국어지만, 한국어 습득을 ‘플러스 알파’가 아닌 당연한 능력으로 여기는 주변 시선은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황 교사는 “일본학교에 다니던 한 교포 아이가 한류 붐으로 일본인 친구에게 한국 노래 가사를 해석해달라고 부탁받았지만 해석하지 못해 큰 컴플렉스를 느꼈다고 한다”면서 “교포들에게 한국어는 자신감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건국학교 한 구석에는 지진으로 금이 가고 낡은 학교 건물 증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가 공사비 30%를 보조한 공사다.

최철배 교장은 한국학교에서 한국식 교육을 100% 하지 않고 일본 교육을 많이 하느냐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학교의 설립 배경이나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이곳 학생 80%는 한국에 유학을 다녀온다 해도 미래의 생활 터전으로 일본을 생각하는 현실. 고국에서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장은 “재일동포는 민족교육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본에 뿌리를 내려 두 나라의 가교가 되는 대한민국의 자산”이라며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이 생활터전인 재일교포가 일본 보통교육을 받아야 이 나라에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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