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적용될 한미 방위비 분담금 제 3차 협상이 22일부터 서울에서 열렸다. 우리 정부는 분담금이 다른 용도로 전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인데, 전용이 가능한 기존 분담금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 측에 '전용 면죄부'만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방위비 분담금이 미군기지 이전비 등으로 전용돼 온데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제도적 차원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다른 용처로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국과 2004년 용산기지 및 미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연합토지계획관리협정(LPP)을 맺으면서 용산기지 이전사업(YRP) 비용은 정부가 부담하고, 미 2사단 이전 비용은 미국이 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쓰지 않고 모아뒀다 2사단 이전사업 비용으로 사용해 협정위배 논란이 빚어졌었다.
문제는 지금 주한미군이 가지고 있는 1조 2697억원(분담금 잔액 7380억+미지급액 5317억)의 돈이 전용될 가능성은 어떻게 차단하느냐다. 주한미군이 평택에 동북아 최대 규모로 집중 재배치되면, 한국이 향후 '개선된 제도'의 혜택을 볼 만한 큰 사업도 없다.
외교부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주장하는 '미래의 전용가능성' 보다 중요한 것이 '지금 현재' 사태인 방위비 분담금 전용을 막는 방안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지난 1차 협의 때부터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정부는 이 1조 2697억원에 대해서는 양국 사이에 양해가 이뤄졌고 이미 끝난 얘기나 마찬가지는 입장이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미사용액 7380억원은 대부분 기지이전 사업에 쓰여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며 "사용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사업 대부분이 거의 진행된 만큼 이 부분을 문제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단지 이를 근거로 활용해 개선책을 주장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우리가 미국에 주기로 했지만 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미지급액 5338억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그 금액은 이미 배정해 놨고 협의가 끝난 부분이기 때문에 건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외교부는 앞서 관련 문제가 쟁점이 됐던 2009년 국회 외통위 '한미 방위비분담 협정에 관한 공청회'에서는 "분담금을 기지이전에 사용하는 것도 주한미군을 위한 시설 건설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며 미측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이번 협의 끝에 '전용 방지에 대한 개선책 마련'에 성공할 경우, 동시에 이 안은 미군이 갖고 있는 1조 넘는 돈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지적된다. 한마디로 "다음에는 안 그럴 테니, 그 전에 잘못한 것은 확실하게 잊어주겠다"는 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실제 완료되는 시점이 2016년으로 예정돼 있는 만큼, 문제의 1조 2697억원은 계속 '문제적 상황' 속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제도가 개선됐다'며 우리 정부가 자평하는 동안, 미측은 확실한 면죄부를 가지고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CBS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