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99% 이기적인 동물, 그래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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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고' 김용화 감독 인터뷰

영화 미스터고 포스터

 

당연히 인간과 동물이 교감하는 영화일줄 알았다. 제작비 225억 원이 투입됐고, 120억 원을 들여 고릴라 링링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았나. 하지만 김용화 감독의 네 번째 영화 '미스터 고'는 그렇지 않았다.

미스터 고는 당찬 소녀 조련사 웨이웨이(서교)와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이 어려운 현실을 딛고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욕심에 눈먼 '이기적인' 인간 군상에 관한 풍경화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한 속물적인 인간이 인간보다 나은 동물의 헌신과 사랑에 감복해 마음을 바꾸는 이야기다.

이는 고릴라의 소울메이트일 것이라고 기대된 소녀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 또한 고릴라를 야구시켜 돈을 벌 목적으로 벌여진 거대한 이벤트에서 자기자만을 깨닫고 반성한다. 고릴라는 그런 가련한 소녀를 위해 변함없이 아빠가 돼준다.

미스터 고는 '오! 브라더스'(314만명) '미녀는 괴로워'(622만명) '국가대표'(848만명)로 매번 자신의 흥행기록을 경신해온 충무로 흥행제조기 김용화 감독의 신작으로,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개봉 2주차를 보낸 이 영화의 흥행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그나마 중국에서는 국내와 달리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며 7769만 위안(141억 여원)을 벌어들였다.

미스터 고가 성취한 기술적 성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오히려 흥행에 발목이 잡힌 것은 김용화 감독이 그동안 잘한다고 평가받던 드라마에 있었다.

김용화 영화의 특징은 웃음과 함께 눈물을 안겨준다는 것이었다. 미스터 고에는 웃음은 있되 눈물이 부족했다. 굳이 눈물이 아니라도 어떤 뜨거운 감정의 파고를 경험할 것이라고 기대된 이 영화는 감독 영화 중 가장 '쿨' 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김감독은 극중 스포츠 에이전트 성충수를 연기한 성동일에게 눈물을 쏟아낼 만한 장면에서도 감정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웨이웨이가 성충수에게 "사실은 난 고릴라 말을 모른다"고 자기반성하는 장면에서 웨이웨이를 연기한 서교가 감독의 의도보다 더 울먹였다는 이유로 편집에서 삭제할까 고민했다고 최근 노컷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밝혔다. 그가 이렇게 전작들과 달리 감정을 자제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이 영화를 통해 앞서 밝혔듯 "이기적이고, 앞만 바라보고, 욕망하고, 배신하고, 의심하고, 단죄하고, (멋대로) 의미 규정하는 대다수의 인간 군상과 그걸 깨닫고 다른 선택을 하는 인간적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미스터고 개봉에 앞서 "(돈과 명예를 다 얻은) '국가대표' 이후 엄청난 허탈감과 허무감이 밀려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6개월간 무위도식하며 나쁜 생각도 했다고 밝힌 그는 이 영화가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꿔놨다고 했다. 미스터 고는 이런 감독 개인의 자기반성 뒤에 나온 첫 번째 영화다.

김 감독은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은 순도로 치면 99프로가 이기적이라고 본다. 자기 이득을 위해 타인의 실패를 값지게 여기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그 나머지 1%의 인간성이 99프로의 이기심을 흔들어놓으면 그게 감동이라고 본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언급했다. "스필버그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인간이 동물 중 가장 잔인하다, 하지만 그 1프로의 영혼 때문에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김 감독 영화에 항상 성동일이 연기하는 '개심' 캐릭터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김감독은 성동일을 자신의 영화에 매번 기용하는 이유로 “연기를 잘하고,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소 “연기를 잘하는 것은 고통의 양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녹록치않은 삶을 살았는데도 후배들에게 베풀줄 아는 인간 성동일의 삶에 경의를 표했었다.

배우 김강우에 대해서도 그는 “인간이 멋지다”는 이유로 향후 함께 작업할 것임을 내비쳤다. “마음과 달리 쓸데없이 입 밖에 내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전 그렇게 쿨하고 살아도 주변은 따뜻한 사람으로 채우고 싶다. 김강우는 10년 전에 눈여겨본 친구다. 좋은 사람이다. 그가 얼마나 연기 잘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영화 하는 이유?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어서"

미스터 고에서 야구장은 단순히 스포츠를 하는 공간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남긴 수십 억대 빚을 갚기 위해 야구장에 선 소녀가장 웨이웨이를 비롯해 크나큰 야심으로 인간이 아닌 고릴라를 야구장에 세운 성충수, 고릴라를 선수로 기용해서라도 승리를 얻고 싶은 구단주들, 그리고 웨이웨이와 같은 이유로 또 다른 고릴라 레이팅을 야구장에 밀어 넣은 사채업자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의 욕망이 그곳에 집결돼있다.

김용화감독(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후반부 아수라장이 되는 야구장신에서 레이팅이 던지고 링링이 쳐낸 야구공이 산산조각이 나자 승리를 위해 실 조각을 주워 담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연출된 것은 단지 관객을 웃기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닌 것이다.

더불어 웨이웨이에게조차도 이해받지 못했던, 사람들 멋대로 규정한 '악역' 레이팅이 아수라장을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김감독은 레이팅에 대해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버림받은 고릴라다. 더워서 킁킁 거리며 혀를 내미는데, 화를 낸다고 오해받는다. 레이팅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야구장신은) 지구의 주인인척 하는 인간에 대한 단죄의 클라이맥스다. "

미스터 고는 이처럼 다양한 관계 속의 인간군상에 대한 풍자를 굵은 줄기로, 속물적 인간의 개심과 아빠 되는 고릴라의 이야기까지 보태지면서 드라마가 분산되는 감이 없지 않다.

웨이웨이에 대한 링링의 사랑은 잘 보이나 그 역은 약하다는 점도 흥행의 약점으로 보인다. 동물영화의 일반적인 주인공과 달리 이 영화에서 웨이웨이는 어린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빚과 고아 서커스단을 이끄는 가장의 무게로 매사 냉정한 모습이다.

성충수조차도 “넌 어린 애가 왜 그렇게 돈을 밝히느냐”고 핀잔을 줄 정도다. 그러다보니 다리부상이 심한 링링이 야구장에 나가도록 한 점을 두고 ‘동물학대’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웨이웨이에 대한 어긋난 첫인상일 수 있다.

이밖에 성충수의 개심 계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성충수는 어린 소녀에게 협박을 서슴지않는 독한 모습을 보이다가 웨이웨이가 링링에게 매정하게 화풀이 당할 때 그 모습에 연민을 느끼고 술잔을 기울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성충수나 웨이웨이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게 아니고 전체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관계로 그들의 내면을 놓칠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여럿 상황에 대해 알고보면 꽤나 친절한 설명을 보태나 이를 다 주워담기는 쉽지 않다.

웨이웨이를 압박하는 중국사채업자 림샤오강(김희원) 등 캐릭터의 성격이 이분법으로 나눠지지 않은 점도 혼란을 줄 여지가 있다. 따져보면 이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인물도 착하기만 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다.

독하고 얄밉고 한심하나 그 이면에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다. 김용화 감독은 착한 악당의 등장에 대해 “어떤 상황에 처한 인간이 있을 뿐 개연성 없는 악인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생각대로 되면 인생이 재미가 없죠.” 김용화 감독을 만났을 당시에도 미스터 고는 흥행에 있어 좋은 출발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 감독 전작들이 서서히 역전해 장기전에 성공했기에 희망은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저 말을 할 여유가 조금은 남아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27일까지 겨우 100만을 넘긴 미스터고의 국내흥행은 크게 반전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설상가상 이번 주에는 화제작 '설국열차'와 신작 한국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개봉하면서 극장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이번 영화를 실패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중국 및 아시아흥행이 남아있고, 3D와 비주얼 이펙트 부문에 있어서는 단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김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이유로 “위로해주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재미는 중요한 요소라 기본이고, 관객을 위로하고, 제가 위로받고 싶어서 한다.”

김 감독의 차기작이 그 어느 때보다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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